WIPIVERSE

애국인민운동

애국인민운동(핀란드어: Isänmaallinen kansanliike, IKL)은 1932년부터 1944년까지 존재한 핀란드의 국민주의·반공주의 정당이다.

개요

애국인민운동은 1932년 핀란드의 극우 민족주의 운동이었던 라푸아 운동(Lapuan liike)의 후신으로 창당되었다. 창당 주체는 헤르만 구메루스, 빌호 아날라, 에르키 래이쾨넨 등이었으며, 라푸아 운동의 지도자였던 비흐토리 코솔라는 창당 당시 맨챌래 반란 사건으로 수감 중이었으나 명목상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이념 및 성격

애국인민운동은 강력한 반소(反蘇) 외교 정책을 주장하였고, 대핀란드주의(Greater Finland)를 당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또한 핀란드 내 스웨덴어 사용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다. 지도부 다수가 루터교 사제이거나 남포흐얀마 지역의 경건주의 운동(헤래내이쉬스) 관련자였으며, 의회의 기독교 도덕화를 주장하는 교권파시즘(clerical fascism)적 성향을 띠었다.

당원들은 검은 상의에 파란 타이를 착용하는 제복을 사용하였고, 이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의 영향과 함께 헤래내이쉬스의 검은 옷 전통에 기반한 것이었다. 당원들 간에는 로마식 경례를 사용하였다.

조직

산하에 청흑단(Sinimustat)이라는 청년 조직을 두었으며, 단원들은 전투 훈련을 받았다. 청흑단의 단장은 엘리아스 시모요키 목사였다. 청흑단은 1936년 활동이 금지되었으나, 이후 흑의사(Mustapaidat)라는 이름으로 재조직되었다.

주요 지지 기반

주요 지지층은 부농, 교육받은 중산층, 공무원, 루터교 성직자, 대학생들이었다. 지리적으로는 쿠오르타네, 라푸아, 일마요키 등 남포흐얀마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정치 활동 및 쇠퇴

애국인민운동은 전신인 라푸아 운동과 달리 의회 선거에 참여하였다. 1933년 총선에서는 국민연합당(KOK)과 선거연합을 구성하여 200석 중 32석을 획득하였고, 이 중 14석이 애국인민운동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의 탄압과 법적 제재(제복 사용 금지, 사적 준군사조직 운영 금지 등)로 인해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었다.

1936년 총선에서 14석을 유지하였으나, 1939년 총선에서는 8석으로 감소하였다. 우르호 케코넨(당시 내무장관)과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 등 중도우파 및 보수우파 정치인들이 애국인민운동에 강력히 반대하였다.

겨울전쟁(1939~1940)과 모스크바 평화 조약으로 핀란드 영토의 10분의 1이 소련에 할양되자, 애국인민운동은 이를 의회 정치의 외교적 실패 증거라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1941년 1월에는 당 총재 빌호 아날라가 랑겔 내각에 운수공공장관으로 입각하였으나, 이는 모든 정당(핀란드 공산당 제외)이 참여한 연정 내각이어서 큰 의미는 없었다.

해산

1944년 9월 19일, 핀란드와 소련 간의 휴전(계속 전쟁 종전)이 체결된 지 4일 후, 소련의 요구에 의해 핀란드 정부는 애국인민운동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로써 12년간의 정당 활동이 종료되었다.

이후

1993년, 애국인민동맹(Isänmaallinen Kansallis-Liitto)이라는 군소 극우 정당이 창당되면서 IKL이라는 약칭이 정치계에 재등장하였으나, 21세기 현재까지 그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