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비테즈
앙투안 비테즈(Antoine Vitez, 1930년 12월 20일 ~ 1990년 4월 30일)는 프랑스의 무대 연출가, 배우, 시인이자 번역가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같은 곳에서 사망했다.
생애 초기
비테즈는 파리에서 태어나 배우로 훈련받았으며, 19세에 테아트르 모벨에서 처음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파리 국립연극예술원 진학에는 실패했으나 이후 공산당 활동가가 되었고,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공산당을 탈당했다. 1958년 루이 아라공을 만나 1960년부터 1962년까지 그의 개인 비서로 일했다. 장 빌라르가 발행하던 잡지 《테아트르 퓌퓔레르》에 평론을 기고하기도 했다.
연출 활동
비테즈는 1966년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를 캉 문화회관에서 연출하면서 처음으로 연출가로서의 기회를 얻었다. 이후 마야코프스키의 《목욕탕》, 예브게니 슈바르츠의 《용》, 체호프의 《갈매기》 등 러시아 및 그리스 레퍼토리를 주로 다루다가, 이후 라신, 괴테, 브레히트 등 프랑스·독일 레퍼토리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마리보, 몰리에르, 폴 클로델 등 고전 및 현대 작품을 폭넓게 연출했다.
1968년 국립연극예술원 교수가 되었으며, 1972년에는 이브리 극장가(Théâtre des Quartiers d'Ivry)를 설립하고, 같은 해 아마추어와 전문가가 함께하는 연극 워크숍인 아틀리에 다브리(Ateliers d'Ivry)를 설립했다. 1981년에는 샤이요 국립극장의 책임자가 되었고, 1988년 6월에는 프랑스 최고의 국립 극단인 코메디 프랑세즈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어 1990년 사망할 때까지 그 직책을 수행했다.
연극 미학
비테즈는 무대를 현실 재현의 장소가 아닌 관객의 사고를 요구하는 '힘의 장(force field)'으로 보았다. 그는 고전 텍스트를 '침몰한 범선'에 비유하며, 멀고 고풍스럽고 신화적인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옹호했다. 또한 '모두를 위한 엘리트 극장'(théâtre élitaire pour tous)이라는 개념을 주창하여, 높은 수준의 예술을 일반 대중에게 제공하고자 했다. 그의 연출은 자유로운 놀이와 관념의 연상에 바탕을 두었다고 평가된다.
번역 및 기타 활동
비테즈는 체호프, 마야코프스키, 미하일 숄로호프 등의 러시아 작가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또한 배우로서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주요 출연작으로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 《녹색 방》(1978), 《전쟁은 끝났다》(1966) 등이 있다.
유산
그의 이름을 딴 극장으로는 현재 엑스-마르세유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테아트르 앙투안 비테즈와 이브리쉬르센에 있는 테아트르 다브리 앙투안 비테즈가 있다. 그의 연극 교육의 중요성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연극사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