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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파타 유니스

압둘 파타 유니스(아랍어: عبد الفتاح يونس, 1944년 ~ 2011년 7월 28일)는 리비아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압둘 파타 유니스 알 오베이디(아랍어: عبد الفتاح يونس العبيدي)라고도 하며, 파타 유니스로 약칭되기도 한다.

리비아 동부 키레나이카 지역 제벨아흐다르 출신으로, 바누 술라림 부족 연맹 중 오베이다트 부 출신이다. 오베이다트 부족은 리비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부족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유니스는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가 주도한 리비아 혁명에 핵심 인물로 참여하였으며, 이후 카다피 정권에서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육군 소장 계급에 올랐고 내무부장관 겸 공공 보안 장관(공안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리비아 정부 내 제2인자로 평가받았다. 1992년에는 영국 대사와의 회담에서 리비아가 런던에서 발생한 영국인 경찰관 이본 플레처(Yvonne Fletcher) 살해 사건에 연루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범인 인도를 제안하였다. 또한 리비아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을 지원한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들에게 보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리비아 봉기(2011년 리비아 내전)가 발발하자, 유니스는 반정부 시위대가 포위한 친정부군 기지를 구출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이끌고 벵가지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는 부대원들에게 시민군을 향해 발포하지 말 것을 명령하였고, 협상을 통해 친정부군이 도시에서 철수하도록 하였다. 이후 2011년 2월 22일 내무부장관직을 사임하고 반정부 시민군 측에 가담하였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카다피가 최후까지 항전하거나 자살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반군 측에 합류한 후에는 리비아 인민해방군(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011년 7월 28일, 유니스는 반군 거점인 벵가지에서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과도국가위원회는 그가 군 자산 오용에 관한 심문을 위해 소환되었다고 밝혔으나, 일각에서는 그의 가족이 카다피 정권과 접촉했다는 혐의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같은 날, 유니스는 불명확한 상황에서 암살당했으며, 그의 시신과 두 명의 보좌관 시신이 벵가지 교외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은 총에 피격된 후 불태워진 상태였다.

그의 사망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 상반된 주장이 존재한다. 과도국가위원회 위원장 무스타파 압둘 잘릴은 유니스가 친카다피 저격범들에게 암살당했다고 발표한 반면, 카다피 정부 측은 그가 이중 간첩으로 몰려 반군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다수의 반군 특수부대원들과 유니스 측근들은 그가 2월 17일 순교자 단체로 알려진 다른 반파 무장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다고 진술했다. 과도국가위원회 재정부장관 알리 타르후니는 한 반군 지도자가 유니스를 심문을 위해 벵가지로 데려오는 대신 그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고 밝혔다. 그의 장례식에서 일부 유족은 카다피 정권으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여, 반군 내부의 복잡한 갈등 양상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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