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물질(dark matter)은 전자기파를 흡수, 반사 또는 방출하지 않아 직접적인 관측이 불가능하지만, 중력 효과를 통해 그 존재가 간접적으로 추론되는 가설적 물질 형태이다. 현재 우주론의 표준 모형인 ΛCDM(람다-차가운 암흑 물질) 모형에 따르면, 우주의 총 질량-에너지 중 약 26.8%가 암흑 물질이며, 일반 물질은 약 4.9%, 암흑 에너지가 약 68.2%를 차지한다. 우주 전체 물질의 약 85%가 암흑 물질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암흑 물질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관측적 증거는 다음과 같은 여러 독립적인 경로를 통해 축적되었다.
1. 은하 회전 곡선 (Galactic Rotation Curves)
나선 은하의 팔들은 은하 중심 주위를 회전하는데, 은하의 광도 질량이 그 물질의 전부라면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회전 속도가 감소해야 한다. 그러나 1970년대 베라 루빈(Vera Rubin)과 켄 포드(Kent Ford)의 관측 결과, 은하 외곽에서의 회전 속도는 거리에 관계없이 평평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은하 외곽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질량, 즉 암흑 물질이 다량 존재함을 의미한다. 전파 천문학을 통한 21cm 수소 원자선 매핑 연구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었다.
2. 은하단의 속도 분산과 비리얼 정리 (Velocity Dispersion in Galaxy Clusters)
1933년 프리츠 츠비키(Fritz Zwicky)는 머리털자리 은하단(Coma Cluster)에 비리얼 정리(virial theorem)를 적용하여, 은하단 가장자리의 은하들이 너무 빠르게 움직여 관측 가능한 질량만으로는 은하단을 중력적으로 묶어둘 수 없음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보이지 않는 질량, 즉 자신이 'Dunkle Materie'(암흑 물질)라고 명명한 것의 증거로 제시했다. 현대의 측정에서도 은하단 내 은하들의 속도 분산을 통해 추정한 질량은 관측된 발광 질량보다 약 5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난다.
3. 은하단의 X선 관측 (X-ray Observations of Galaxy Clusters)
은하단 내부에는 초고온의 뜨거운 가스(수백만에서 수천만 켈빈)가 존재하며, 이 가스는 X선을 방출한다. X선 에너지 스펙트럼과 선속으로부터 가스의 온도와 밀도를 추정하고, 압력과 중력 평형 관계를 이용하여 은하단의 총 질량을 계산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추정된 질량 역시 관측 가능한 물질의 질량을 크게 초과한다.
4. 중력 렌즈 효과 (Gravitational Lensing)
일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거대한 질량(은하단 등)은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하여 더 먼 배경 천체(퀘이사, 은하 등)의 빛을 굴절시킨다. 강한 중력 렌즈 효과(strong lensing)는 배경 은하의 이미지가 호(arc) 모양으로 왜곡되는 현상이며, 약한 중력 렌즈 효과(weak lensing)는 수많은 배경 은하들의 통계적 왜곡을 분석하여 질량 분포를 매핑한다. 이러한 렌즈 효과를 통해 추정한 은하단의 질량은 동적 방법으로 얻은 결과와 일치하며, 암흑 물질의 분포 지도를 작성할 수 있게 한다. 2021년 암흑 에너지 탐사(Dark Energy Survey)는 기계 학습을 활용한 상세한 암흑 물질 지도를 공개한 바 있다.
5. 총알 은하단 (Bullet Cluster)
총알 은하단(1E 0657-56)은 두 은하단이 충돌한 사례로, 암흑 물질 존재의 강력한 증거로 제시된다. 충돌 과정에서 은하단 내의 뜨거운 가스(일반 중입자 물질)는 전자기 상호작용으로 인해 속도가 느려져 중심에 머무른 반면, 은하들(그리고 암흑 물질)은 중력적으로만 상호작용하므로 거의 방해받지 않고 통과했다. 중력 렌즈 효과로 질량 중심을 매핑한 결과, 대부분의 질량(암흑 물질)이 X선을 방출하는 뜨거운 가스의 위치와 분리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수정 중력 이론(MOND 등)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암흑 물질의 존재를 강력히 지지하는 관측 증거이다.
6.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CMB)은 극히 작은 온도 비등방성(이방성)을 포함하며, 이를 각도 파워 스펙트럼으로 분석하면 일련의 음향 피크(acoustic peak)가 나타난다. 이 피크들의 상대적 높이와 위치는 우주의 구성 성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첫 번째 피크는 주로 중입자 밀도를, 세 번째 피크는 암흑 물질 밀도를 반영한다. WMAP과 플랑크(Planck) 위성의 관측 결과는 ΛCDM 모형을 강력히 지지하며, 암흑 물질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는 이론(예: MOND)으로는 CMB 파워 스펙트럼을 재현하기 어렵다.
7. 대규모 구조 형성 (Large-Scale Structure Formation)
초기 우주에서 일반 물질(중입자)만 존재했다면, 복사의 압력으로 인해 밀도 섭동이 씻겨 나가 현재 관측되는 은하와 은하단 같은 구조가 형성될 충분한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암흑 물질은 전자기 복사와 상호작용하지 않으므로 먼저 중력적으로 뭉쳐 퍼텐셜 우물(potential well)을 형성하고, 이후 일반 물질이 이 우물로 낙하하여 구조 형성을 가속화한다. 따라서 현재 관측되는 우주의 대규모 구조는 암흑 물질의 존재를 전제할 때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8. Ia형 초신성과 우주 팽창
Ia형 초신성의 관측 결과 우주의 팽창이 가속되고 있음이 밝혀졌으며, 이는 암흑 에너지의 존재로 설명된다. 우주가 거의 평탄(flat)하다는 관측 결과(Ωtot ≈ 1)에 따르면, 모든 에너지 밀도의 합이 1이 되어야 한다. 관측된 암흑 에너지 밀도(ΩΛ ≈ 0.690)와 일반 물질 에너지 밀도(Ωb ≈ 0.0482)의 차이는 물질처럼 행동하는 누락된 구성 요소, 즉 암흑 물질(Ωdm ≈ 0.258)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9. 중입자 음향 진동 (Baryon Acoustic Oscillations, BAO)
초기 우주의 광자-중입자 유체에서 발생한 음향 진동은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과 은하 분포에 특정한 길이 척도(약 147 Mpc)를 남겼다. 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SDSS)와 2dF 은하 적색편이 탐사에서 관측된 BAO 신호는 ΛCDM 모형과 일치하며, 허블 상수와 우주 평균 물질 밀도에 대한 정밀한 추정치를 제공한다.
이상의 독립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관측 증거들로 인해 현재 천체물리학 및 우주론 학계에서는 암흑 물질의 존재가 널리 인정되고 있다. 다만 암흑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WIMP), 액시온(axion), 비활성 중성미자(sterile neutrino), 원시 블랙홀 등 다양한 이론적 후보에 대해 실험적 탐색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