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혼족(박트리아어: αλχον(ν)ο 알혼/알한), 또는 알혼 훈족(Alchon Huns)은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 국가를 세운 유목민이다. 이들은 파로파미사다이(Paropamisadae) 지역에 처음 위치한 것으로 언급되었으며, 이후 남동쪽으로 확장하여 펀자브, 인도 중부, 에란(Eran), 카우샴비(Kausambi)까지 이르렀다. 알혼의 인도 아대륙 침공은 그들보다 약 100년 앞서 있었던 키다라 훈족(Kidarite Huns)을 근절하고 굽타 제국의 몰락에 기여했으며, 어떤 의미에서 고전기 인도의 종말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명칭과 어원
'알혼'이라는 이름은 주로 그들의 동전과 인장에 새겨진 문자에서만 등장하는데, 박트리아 문자에서는 '알혼(alkhon(n)o)' 또는 '알한(alkhan(n)o)'으로, 산스크리트어에서는 '라카나(lakhāna)'로 나타난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어원 추정이 존재한다. 프란츠 그레네(Frantz Grenet)는 페르시아의 종말론적 문헌에 등장하는 '카름 키오니테스(Karm Chionites)'가 알혼의 번역일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때 '카름(karm)'은 튀르크어로 '붉은색'을 의미한다. H. 훔바흐(H. Humbach)는 '알(Al-)'이라는 이름이 알란족(Alans)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한스 바커(Hans Bakker)는 '훈'에 대한 박트리아 단어가 이미 존재하므로 '-khon'이 '훈'을 의미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으며, 호다다드 레자카니(Khodadad Rezakhani)는 '알카나(Alkhana)'가 서부 카슈미르에서 통치자를 뜻하는 명칭이었다고 주장했다.
동시대의 인도인들은 에프탈(Hephthalites)과 알혼을 구분하지 않고 단지 '후나족(Hūṇas)'이라고 불렀다. '훈'이라는 용어는 맥락에 따라 유럽의 훈족, 인도 북부를 침공한 알혼 훈족, 또는 이들과 관련된 부족 전체를 지칭하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외모와 문화적 특징
알혼 훈족의 두드러지는 외모적 특징은 인공 두개골 변형(artificial cranial deformation)의 결과인 길쭉한 머리였으며, 이는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지였다. 이는 그들이 주조한 동전에 새겨진 통치자들의 초상화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또한 수염이 없는 얼굴도 특징적인데, 이는 풍성한 수염을 가진 사산 제국 황제들의 초상화와 대비된다. 알혼 훈족은 동전과 인장에 그들의 상징인 탐가(tamgha)를 새겨넣어 정체성을 표시했다.
역사
알혼 훈족은 370년경 박트리아 지역에서 처음 등장하여 사산 제국 및 키다라와 접촉했다. 380~385년 무렵에는 카불리스탄 일대를 사산 제국으로부터 탈취했다. 430년경 가장 유명한 통치자인 킹길라(Khingila, 재위 430~490년)가 등장하여 키다라인을 몰아내고 힌두쿠시를 장악했다. 460~470년 사이에는 간다라와 펀자브 지역을 점령하고 굽타 제국을 인도 동부로 밀어냈다.
제1차 훈족 전쟁(495~515년)에서 알혼 왕 토라마나(Toramana)는 인도 영토 깊숙이 진격하여 구자라트와 마디아프라데시까지 도달했으며, 굽타 제국의 몰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515년 아울리카라 왕조의 프라카샤다르마(Prakashadharma)에게 패배하여 펀자브 지역으로 후퇴했다.
제2차 훈족 전쟁에서 토라마나의 아들 미히라쿨라(Mihirakula, 재위 515~540년)는 528년 손다니 전투에서 말와의 야소다르만(Yasodharman)과 굽타 황제 나라심하굽타(Narasimhagupta)가 이끄는 인도 연합군에게 패배했다. 이후 알혼 훈족은 간다라와 카슈미르 지역으로 후퇴하여 스리 프라바라세나(Sri Pravarasena, 재위 530~590년)의 통치 아래 정착했다. 6세기 말에는 카불 지역으로 재차 이동하여 네자크 훈족(Nezak Huns)과 동화되었으며, 670년경 튀르크 샤히(Turk Shahi) 왕조로 대체되면서 소멸했다.
종교
알혼 훈족은 초기에는 불교에 기여한 측면이 있었다. 492~493년경의 탈라간(Talagan) 구리 두루마리에는 알혼의 4대 왕(킹길라, 토라마나, 자부카, 메하마)이 스투파를 건축하고 불교에 기여한 인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 미히라쿨라 치하에서 불교에 대한 태도가 극적으로 반전되어, 간다라 지역에서 천 개가 넘는 불교 수도원이 파괴되고 승려들이 추방되는 등 심각한 불교 박해가 자행되었다. 알혼 훈족은 일반적으로 스텝 유목민들의 공통적 신앙인 태양 숭배를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는 시바교나 비슈누 신앙을 따르기도 했다.
영향
알혼 훈족의 인도 침입은 비록 수십 년에 불과했지만, 그 영향은 장기적이었다. 카우샴비나 우자인과 같은 주요 고대 도시가 폐허가 되었고, 불교는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굽타 제국의 붕괴 이후 북인도는 정치적 분열 상태에 빠졌으며, 아울리카라, 마우카리, 마이트라카, 칼라추리, 바르다나 등 여러 지역 왕조가 새롭게 부상했다. 또한 알혼 훈족은 간다라, 굽타, 사산 제국의 양식을 결합한 혼합 예술을 발전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