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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얀자

알프레트 얀자(Alfred Jansa, 본명: Alfred Johann Theophil Jansa von Tannenau, 1884년 7월 16일 ~ 1963년 12월 20일)는 오스트리아의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원수보(Feldmarschalleutnant)였다.

생애

알프레트 얀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갈리치아 지역의 스타니슬라우(현재의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키우스크)에서 태어났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의 참모 장교로 세르비아 전선, 이탈리아 전선, 러시아 전선 등 여러 전역에서 복무했으며, 불가리아 군에 대한 오스트리아 연락 장교(1915~1916)로도 활동했다.

전쟁 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군대에 편입되어 1930년 소장으로 진급하였고, 1933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주독일 무관으로 베를린에 파견되었다. 1936년 오스트리아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나치 독일과의 대립

얀자는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앙슐루스)에 강력히 반대했으며, 무력 저지를 위한 국방 계획(이른바 '얀자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는 독일의 침공 시 이탈리아의 지원을 기대하며 트라운 선(Line)에서 방어전을 펼친 뒤 시간을 벌어 국제적 개입을 유도하는 전략을 구상했다.

그러나 1938년 2월 12일, 오스트리아 총리 쿠르트 슈슈니크가 아돌프 히틀러와 체결한 베르히테스가덴 협정 제8항에 따라 얀자는 해임되었고, 그 자리는 프란츠 뵈메가 대체하였다. 이는 히틀러가 반나치 성향의 얀자를 제거할 것을 요구한 결과였다. 얀자는 1938년 2월 17일 공식 퇴역하였다.

이후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된 후, 얀자는 나치 정권의 반대자로 분류되어 가족과 함께 에르푸르트로 강제 이주당했으며, 연금이 삭감되어 자동차 부품 판매상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는 1936년 만난 베니토 무솔리니의 개인적 중재가 더 심각한 처벌을 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46년 오스트리아로 귀환하였으며, 1963년 빈에서 사망하였다.

평가

알프레트 얀자는 나치 독일의 팽창에 맞서 오스트리아의 독립을 수호하려 했던 군사 지도자로 평가된다. 그의 생애와 군사적 저항 계획은 2011년 저서 《Feldmarschalleutnant Alfred Jansa: ein österreichischer General gegen Hitler》(야전원수보 알프레트 얀자: 히틀러에 맞선 오스트리아의 장군)에 상세히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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