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7세(Alfonso VII, 1104년경 ~ 1157년 8월 21일)는 중세 이베리아 반도의 레온-카스티야 연합왕국의 국왕으로, 재위 기간은 1126년부터 1157년까지이다. 본명은 알폰소 라이문데스(Alfonso Raimúndez)이며, "전(全) 스페인의 황제"(Imperator Totius Hispaniae)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르고뉴 가문 출신의 라이문트와 레온-카스티야의 여왕 우라카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알폰소 6세의 외손자에 해당한다.
알폰소 7세는 어린 시절 어머니 우라카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인 아라곤의 알폰소 1세 사이에서 레온-카스티야의 지배권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성장했다. 1111년 갈리시아의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1126년 어머니 우라카가 사망한 뒤 레온과 카스티야의 국왕으로서 본격적인 통치를 시작했다. 이후 아라곤과 나바라(팜플로나)의 왕들, 바르셀로나 백작, 그리고 여러 이슬람계(무어) 통치자들로부터 황제로 공식 인정받았다.
그의 재위 기간은 중세 스페인 역사에서 통일 제국의 이념이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시기로 평가된다. 1135년에는 대규모 의식을 통해 황제 칭호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군사적으로는 이슬람 세력에 맞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으며, 1147년에는 알메리아를 점령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1157년 알메리아를 다시 상실했고, 코르도바 역시 점령한 지 3년 만에 되찾겼다. 1146년부터는 북아프리카의 알모아데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하기 시작하면서, 알폰소 7세는 알모라비데와 동맹을 맺고 알모아데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전투에 여생을 바쳤다.
정치적으로는 포르투갈의 독립을 막지 못했다. 1143년 사모라 조약을 통해 아폰소 엔리케스를 포르투갈의 국왕으로 인정함으로써 포르투갈 왕국의 독립을 공식 승인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스페인의 관습에 따라 유언으로 왕국을 분할하여, 카스티야는 큰아들 산초 3세에게, 레온은 둘째 아들 페르난도 2세에게 각각 물려주었다. 이러한 분할 조치는 중세 스페인에서 통일 제국의 개념을 사실상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평가된다.
알폰소 7세는 1157년 8월 21일 카스티야의 프레스네다에서 사망했다. 그의 통치 시기는 레온-카스티야 왕국의 중세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이후 카스티야와 레온은 1230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재통합되기까지 분리된 상태로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