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섭정국(Regency of Algiers, 아랍어: دولة الجزائر, 오스만 튀르키예어: ایالت جزایر غرب)은 1516년부터 1830년까지 오늘날 알제리 지역에 존재했던 정치체이다. 북아프리카 바르바리 해안에 위치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의 명목상 종속국이자 반독립적인 속주로서 기능하였다.
개요
알제리 섭정국은 사략선 선장이었던 아루즈 바르바로사와 그의 형제 하이레딘 바르바로사(하이레딘 레이스)에 의해 건국되었다. 이들은 1516년 알제를 점령하였고, 이후 하이레딘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게 충성을 맹세하여 1519년 알제리는 오스만 제국의 속주(에yalet)로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하이레딘은 베이레르베이(도지사)로 임명되었다. 수도는 알제였다.
역사
알제리 섭정국은 16세기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속에서 성장하였다. 바르바로스 형제와 그 후계자들은 합스부르크 스페인에 대한 해상 성전(지하드)을 내세워 정당성을 확보하고 해적 국가를 건설하였다. 16~17세기 동안 알제리 섭정국은 지중해에서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하였으며, 바르바리 해적들의 주요 근거지로서 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선박을 나포하고 인질을 잡아 몸값을 요구하는 사략 활동을 벌였다.
17세기 중반 이후 예니체리 군단의 쿠데타로 섭정국은 사실상의 군사 공화국으로 전환되었으며, 통치자(데이)는 오스만 술탄이 임명하는 대신 알제의 의회(디완)에서 선출하게 되었다. 1710년부터는 데이들이 직접 파샤 칭호를 사용하면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실질적 독립이 더욱 강화되었다. 다만 금요 예배 시 술탄의 이름을 거명하고 주화에 새기는 등 명목상의 종주권은 인정하였다.
통치 체제
알제리 섭정국의 통치는 예니체리 군단과 해적 선장들로 구성된 군사 귀족층에 의해 이루어졌다. 최고 통치자는 데이(Dey)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종신 선출직이었다. 행정은 데이를 보좌하는 재상(카즈나지), 해군 및 외무 장관(와킬 알카라즈), 내무 및 군 사령관(아가 알마할라) 등 주요 각료들로 구성된 내각이 담당하였다.
영토는 크게 알제 수도권(다르 알술탄)과 동부(콩스탕틴), 중부(티테리), 서부(마스카라→마주나→오랑)의 세 개의 베일릭(속주)으로 나뉘어 각각 베이(총독)가 통치하였다.
경제
16~17세기에는 사략 활동과 노예 무역이 경제의 핵심이었다. 알제리 해적들은 유럽 선박을 나포하고 선원과 승객을 노예로 삼아 몸값을 받거나 노동력으로 활용하였다. 18세기 들어 사략 활동이 감소하면서 밀 수출과 국제 무역이 주요 수입원으로 대체되었으며, 유럽 국가들로부터 정기적인 조공도 받았다.
쇠퇴와 종말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열강의 해군력 강화와 미국과의 바르바리 전쟁(1801~1815, 1815)에서의 패배로 알제리 섭정국의 해상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1816년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의 알제 폭격으로 결정타를 입었다.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혼란, 흉작, 재정난이 이어졌다.
1830년, 후세인 데이와 프랑스 영사 간의 외교 마찰(파리채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의 샤를 10세가 알제리 침공을 감행하였다. 1830년 7월 5일 알제가 함락되면서 알제리 섭정국은 붕괴되었고, 이후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통치가 시작되었다.
명칭
역사 기록에서 알제리 섭정국은 '알제 왕국', '알제 공화국', '알제 국가', '알제리인 국가', '오스만령 알제리'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이는 이 정치체가 오스만 제국의 속주이면서도 사실상 독립적인 국가로 기능했던 복합적 성격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