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다니엘 타에르(Albrecht Daniel Thaer, 1752~1828)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활동한 독일의 의학자이자 농학자이다. 그는 독일 농업과학의 창시자로 평가되며, 농업을 학문적 체계로 정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타에르는 1752년 5월 14일 하노버 선제후국(현재 독일 니더작센주)의 첼레(Celle)에서 궁정 의사였던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괴팅겐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고향 첼레에서 의사로 활동하였고, 이후 영국 국왕이자 하노버 선제후였던 조지 3세의 궁정 의사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의사로 활동하던 그는 정원 가꾸기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점차 농업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1802년에는 독일 최초의 농업 훈련 기관을 첼레에 설립하였으며, 1804년에는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초청을 받아 브란덴부르크주 뫼글린(Möglin)에 정착하여 농업 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이 아카데미는 독일 최초의 농업 교육 기관으로, 이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의 농업 연구 전통으로 이어졌다.
타에르의 대표 저서로는 4권으로 구성된 《합리적 농업의 원리(Grundsätze der rationellen Landwirthschaft)》(1809~1812)가 있다. 이 저서에서 그는 토양 이론, 경작 방법, 비료 사용, 가축 사육 등 농업 전반에 걸친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였다. 특히 그는 식물의 영양과 관련하여 부식토(humus) 이론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론은 이후 화학적 토양 과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는 농업 경영에 있어 회계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회계는 모든 사업의 알파벳"이라는 표현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영국식 농업 기법을 독일로 소개하고, 양모 개량에도 힘을 기울였다.
타에르는 1828년 10월 26일 브란덴부르크주 브리첸(Wriezen)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독일 여러 도시(라이프치히, 베를린, 첼레, 할레 등)에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그의 초상은 1929년부터 1945년까지 발행된 독일 10라이히스마르크 지폐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2002년 독일에서 그의 250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었다.
현재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는 그의 이름을 딴 타에르 농업·원예과학 연구소(Thaer-Institute for Agricultural and Horticultural Sciences)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가 세운 농업 교육 기관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