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이스 폰 레딩(독일어: Alois von Reding, 1765년 3월 6일 ~ 1818년 4월 5일)은 스위스의 군인, 정치인이다. 1798년 프랑스의 스위스 침공 당시 스위스 중부 칸톤(주)의 저항을 이끈 인물로, 스위스 역사에서 애국적인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스위츠(Schwyz) 주 출신으로, 1798년 프랑스 혁명 전쟁 중 프랑스군이 스위스를 침공하여 구스위스 연방을 해체하고 헬베티아 공화국을 수립하려 하자, 폰 레딩은 전통적인 연방주의를 지키기 위해 봉기한 스위츠, 우리(Uri), 운터발덴(Unterwalden) 등 중앙 스위스 칸톤의 군대를 지휘했다. 그는 1798년 4월 모르가르텐(Morgarten)과 로텐투름(Rothenthurm)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초기 승리를 거두었으나, 수적 열세와 압도적인 프랑스군의 공세에 밀려 쉴린데레기(Schindellegi) 등지에서 패배했다. 결국 협상을 통해 중앙 칸톤의 저항은 종료되었으나, 프랑스군은 약속을 어기고 무장 해제를 강요하며 가혹한 조치를 취했다.
이후 헬베티아 공화국이 수립된 후, 폰 레딩은 연방주의적 입장을 옹호하며 중앙집권적인 프랑스의 영향력에 반대했다. 1801년 그는 헬베티아 공화국의 란담만(Landammann, 최고 행정관)으로 선출되었으나, 공화국의 중앙집권적 성격과 프랑스의 지속적인 간섭에 대한 불만으로 곧 사임했다. 1802년 프랑스의 압력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스위스에 중재령(Mediationsakte)을 내려 1803년에 칸톤들의 자치권을 일부 회복시킨 후, 폰 레딩은 스위츠 주의 란담만으로 여러 차례 선출되어 지역 정치에 참여했다. 그는 평생을 스위스의 전통적인 자유와 연방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한 인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