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1세(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I Павлович,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1777년 12월 23일 ~ 1825년 12월 1일)는 1801년부터 1825년까지 재위한 러시아 제국의 황제이다. 폴란드 입헌왕국의 초대 국왕(1815년~1825년)이자 핀란드 대공(1809년~1825년)이기도 하였다. 별칭은 '축복받은 자'(Благословенный)이다.
알렉산드르 1세는 파벨 1세와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마리야 표도로브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할머니인 예카테리나 2세(예카테리나 대제)의 손에서 동생 콘스탄틴과 함께 양육되었다. 이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수호성인인 알렉산드르 넵스키에서 따왔다. 1801년 아버지 파벨 1세가 암살된 후 즉위하였다.
재위 기간은 나폴레옹 전쟁의 혼란기에 해당한다. 즉위 초기에는 자유주의적 수사를 자주 사용하였으나 실제로는 러시아의 절대주의 정책을 유지하였다. 재임 초반에 소규모 사회 개혁과 대규모 자유주의 교육 개혁(1803~1804년, 여러 대학 설립)을 추진하였고, 미하일 스페란스키를 최측근 고문으로 기용하여 중앙집권적 콜레기움 체제를 각료위원회, 국무원, 대법원으로 개편하였다. 그러나 의회 설립과 헌법 제정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대외 정책에서는 1804년부터 1812년 사이에 프랑스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네 차례 변경하였으며, 중립, 반대, 동맹 사이를 오갔다. 1805년에는 제3차 대프랑스 동맹에 가담하여 나폴레옹에 맞섰으나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프리틀란트 전투에서 대패한 후, 1807년 틸지트 조약을 통해 나폴레옹과 동맹을 맺고 대륙봉쇄령에 동참하였다. 1807년부터 1812년까지 영국과 소규모 해전을 치렀고, 1809년 스웨덴으로부터 핀란드를 병합하였다. 동맹은 폴란드 문제 등으로 1810년경 붕괴되었다.
알렉산드르 1세의 최대 승리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프랑스군의 참패로 끝난 사건이었다. 이후 반나폴레옹 연합의 일원으로서 폴란드 영토를 획득하였고, 신성 동맹을 결성하여 유럽의 혁명 운동을 억압하는 데 앞장섰다. 재위 후반기에는 점차 독단적이고 반동적으로 변모하여 초기의 개혁을 상당 부분 철회하였고, 교육에서 외국인 교사를 배제하고 종교적·정치적 보수주의를 강화하였다. 스페란스키 대신 알렉세이 아락체예프가 고문이 되어 군사 정착촌을 관장하였다.
1825년 남부 러시아 여행 중 발진티푸스로 사망하였다. 적출 자녀는 모두 요절하여 후계자가 없었으며, 동생 니콜라이 1세가 황위를 계승하였다. 그의 사망 직후 자유주의 성향의 장교들이 데카브리스트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