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 콜차크(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Васи́льевич Колча́к, 1874년 11월 16일 ~ 1920년 2월 7일)는 러시아 제국의 해군 제독, 군사 지도자, 극지 탐험가이다. 러시아 제국 해군에서 복무하며 러일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러시아 내전 당시 반(反)볼셰비키 세력인 백군(White Army)의 최고 지도자로 활동했다.
생애 및 경력
콜차크는 187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해군 포병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1888년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894년 우등으로 졸업하였고, 발트 함대와 태평양 함대에서 복무했다. 해군 장교로서 수문학과 지도 제작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에두아르트 폰 톨 남작이 이끄는 러시아 북극 탐험대에 수문학자이자 지도 제작자로 참여하여 타이미르 반도와 노보시비르스크 제도等地를 탐사했다. 이러한 공로로 러시아 제국 지리학회의 최고 훈장인 콘스탄틴 메달을 수여받았다.
러일 전쟁(1904~1905) 당시에는 포트아서(여순) 방어전에 참여하여 기뢰 부설 작전을 수행했고, 일본 순양함 다카사고 격침에 기여했다. 전쟁 중 부상을 입고 일본에서 포로 생활을 한 후 귀국했다. 이후 러시아 해군 재건에 참여하여 함대 건조 계획과 훈련 프로그램을 수립했으며, 쇄빙선 설계에도 관여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발트 함대에서 기뢰 부설 작전을 지휘했고, 1916년 8월에는 흑해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최연소 부제독이 되었다. 흑해에서 오스만 제국의 석탄 수송선을 공격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러시아 혁명과 내전
1917년 2월 혁명 이후 흑해 함대는 정치적 혼란에 빠졌고, 콜차크는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는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와 임시 정부에 군대의 기강 확립과 사형제 부활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미국과 일본을 경유하여 러시아로 귀환하던 중 볼셰비키 혁명(10월 혁명) 소식을 접했다.
1918년 11월,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반볼셰비키 세력의 쿠데타를 통해 콜차크는 '전러시아 최고 통치자'(Supreme Ruler of Russia)로 선출되었고, 스스로 제독으로 승진했다. 그의 정부는 시베리아 남서부의 옴스크에 본부를 두었으며, 영국 등 연합국의 지원을 받았다. 콜차크 정부는 볼셰비즘 타도, 법질서 회복, 제헌의회 소집, 영토 보전 등을 목표로 내세웠다.
1919년 초반에는 백군이 우파, 카잔 등지를 점령하며 진격에 성공했으나, 보급선 문제와 내부 분열, 지역 주민의 지지 부족으로 점차 후퇴했다. 1919년 11월 적군이 옴스크를 점령하자 콜차크는 이르쿠츠크로 이동하던 중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의해 배신당해 지역 사회혁명당에 인계되었고, 이후 볼셰비키에게 넘겨졌다.
사망
1920년 2월 7일, 이르쿠츠크에서 볼셰비키 혁명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그의 시신은 앙가라 강의 얼음 밑에 버려져 수습되지 못했다.
평가 및 유산
콜차크는 용기와 애국심, 청렴함을 지닌 인물로 평가되나, 정치적 경험 부족과 행정 능력의 결여, 잔혹한 진압 정책(백색 테러)으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의 정권 아래에서 수많은 반대파와 민간인이 처형되고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반혁명 세력의 지도자로 부정적으로 평가되었으나, 1991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그의 재평가 움직임이 일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2002년)와 이르쿠츠크(2004년)에 동상이 세워졌다. 다만 법적 복권 시도는 1999년과 2001년에 모두 기각되었다.
해양학자이자 북극 탐험가로서의 학문적 업적도 남겼으며, 카라 해와 시베리아 해의 빙하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2008년에는 그의 생애를 다룬 러시아 영화 《제독》(Адмиралъ)이 개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