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케렌스키

알렉산드르 케렌스키(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Фёдорович Ке́ренский, 1881년 5월 4일 ~ 1970년 6월 11일)는 러시아의 변호사이자 혁명가, 정치인으로, 1917년 러시아 혁명 기간 중 러시아 임시 정부의 주요 인물이었다. 그는 2월 혁명 이후 수립된 임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전쟁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이후 총리(장관-주석)에 올랐다.

초기 생애 및 경력 심비르스크(현 울리야놉스크)에서 태어난 케렌스키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정치적 급진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제4차 두마(Duma)의 일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노동자 그룹(트루도비키) 소속이었다가 이후 사회혁명당에 합류했다. 그는 차르 체제의 전제정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17년 혁명과 임시 정부 1917년 2월 혁명으로 차르 체제가 붕괴하고 임시 정부가 수립되자, 케렌스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초기 임시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서 정치범 석방 및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민주적 개혁을 추진했다. 이후 그는 전쟁부 장관이 되어 동맹국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지속하고 '케렌스키 공세'를 감행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국내 여론은 악화되었고, 병사들의 사기도 저하되었다.

1917년 7월, 케렌스키는 임시 정부의 총리(장관-주석)가 되어 정국을 수습하려 했으나, 볼셰비키와 군부 간의 갈등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라브르 코르닐로프 장군의 쿠데타 시도(코르닐로프 사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볼셰비키의 군사력이 증대되고 영향력이 커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몰락과 망명 1917년 10월 혁명(볼셰비키 혁명)으로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케렌스키의 임시 정부는 전복되었다. 그는 러시아를 탈출하여 서유럽과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망명 기간 동안 케렌스키는 러시아 혁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담은 회고록과 여러 저작을 남겼으며, 볼셰비키의 전체주의와 차르 체제의 전제정을 모두 비판했다.

그는 1970년 미국 뉴욕에서 사망했으며, 런던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생애는 러시아 혁명의 격동기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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