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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베조브라조프

알렉산드르 베조브라조프(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Безобразов, 1855년~1931년)는 러시아 제국의 군인, 기업가, 정치인으로, 니콜라이 2세 치세 말기에 황실의 신임을 받아 극동 정책과 군사 장비 도입에 관여한 인물이다.

주요 경력과 활동 군사 경력: 육군 중장까지 진급하였으며, 황실 근위대에서 복무했다. 정치적 영향력: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측근인 그리고리 라스푸틴과도 연결되어 있었으며, 황실의 비호 하에 국방 및 외교 분야에서 비공식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극동 사업 및 '베조브라조프 클리크': 1890년대 후반부터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역의 이권 개입을 주도했다. '만주-한국 철도 회사', '동청 철도' 관련 이권, 압록강 유역의 목재 및 광산 채굴권 등을 독점하기 위해 설립된 여러 특권 회사(예: 압록강 목재 회사 등)의 배후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재무장관 세르게이 비테와 대립했으며, 비테의 온건한 경제적 확장 정책을 강경한 군사적·독점적 팽창주의로 대체하려 했다. 러일전쟁 발발에 대한 책임: 1903년 베조브라조프가 주도한 압록강 목재 회사의 무리한 사업 확장과 조선 정부와의 마찰, 이를 비호하기 위한 황실의 군사적 개입 주장은 러시아의 대조선 강경론을 부추겨 러일전쟁 발발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몰락: 러일전쟁 패배 이후인 1905년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은퇴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권 하에서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뒤, 1931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평가 역사학계에서는 그를 니콜라이 2세 말기 황정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모험주의적 외교 정책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한다. 그의 활동은 러시아 제국의 제도적 외교 채널(외무부, 재무부)을 무시하고 황실의 사적 인맥과 특권 회사에 의존하는 '카마릴라' 정치의 전형적인 사례로 인용된다.

참고: 한국사 관련 서적에서는 '베조브라조프파' 또는 '베조브라조프 일당'으로 표기되며, 을사늑약 체결 전후 한반도 이권 침탈의 핵심 주체 중 하나로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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