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러시아 제국의 나히체반나도누(현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아르메니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학생 시절부터 혁명 운동에 투신하여 볼셰비키 당원이 되었다. 1906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여러 차례 체포되고 유배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러시아 제국군에 징집되었고, 군대 내에서 혁명 선전 활동을 벌였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먀스니캰은 볼셰비키 정권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서부 전선 군사 혁명 위원회 의장을 지냈으며, 이후 벨라루스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의 창설에 기여하여 초대 중앙집행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캅카스 지역, 특히 아르메니아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요 직책으로는 다음과 같다:
- 1920년부터 1921년까지 아르메니아 혁명위원회(Revkom) 의장.
- 1921년부터 1922년까지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인민위원평의회(총리) 의장.
- 1922년부터 1925년까지 자캅카스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TSFSR) 연방 평의회 의장.
그는 자캅카스 연방의 창립자 중 한 명으로, 연방 결성 과정과 초기 운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먀스니캰은 레닌의 신뢰를 받았던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1925년 3월 22일, 먀스니캰은 트빌리시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이 사고는 당시 공식적으로는 기술적인 문제로 인한 사고사로 처리되었으나,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기려 아르메니아의 여러 도시와 거리, 그리고 지역 이름에 '먀스니캰'이나 그의 당명인 '마르투니'가 사용되었다. 특히 아르메니아의 마르투니(Martuni) 시와 먀스니캰(Myasnikyan) 지역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