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데르 야기엘론치크

알렉산데르 야기엘론치크 (폴란드어: Aleksander Jagiellończyk, 리투아니아어: Aleksandras Jogailaitis, 1461년 8월 5일 ~ 1506년 8월 19일)는 야기에우워 왕조 출신의 폴란드 국왕이자 리투아니아 대공이다. 리투아니아 대공으로서는 1492년부터 1506년까지, 폴란드 국왕으로서는 1501년부터 1506년까지 재위했다.

생애와 즉위 알렉산데르는 폴란드 국왕이자 리투아니아 대공이었던 카지미에시 4세와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제로는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국왕이 된 블라디슬라프 2세, 폴란드 국왕이 된 얀 1세 올브라흐트, 그리고 알렉산데르의 뒤를 이어 폴란드 국왕이 되는 지그문트 1세 스타리가 있다. 1492년 아버지 카지미에시 4세가 사망하자, 형 얀 1세 올브라흐트가 폴란드 국왕으로 선출되었고 알렉산데르는 리투아니아 대공위를 계승했다. 이후 1501년 얀 1세 올브라흐트가 자식 없이 사망하자, 알렉산데르는 폴란드 귀족들에 의해 폴란드 국왕으로 선출되어 리투아니아 대공과 폴란드 국왕을 겸하게 되었다.

재위 기간 알렉산데르의 재위 기간은 주로 모스크바 대공국과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점철되었다. 리투아니아 대공으로서 그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3세의 딸 옐레나 이바노브나와 결혼하여 관계 개선을 시도했으나, 이는 국경 분쟁과 정교회 신자들의 권리 문제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폴란드 국왕으로서는 귀족 계층(슐라흐타)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는 시기였다. 1505년에는 폴란드 역사상 중요한 헌법인 "니힐 노비(Nihil novi)"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 헌법은 국왕이 의회(세임)의 동의 없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할 수 없도록 제한하여, 폴란드 귀족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왕권 약화와 귀족의 입법권 강화로 이어졌다. 또한 튜턴 기사단과의 관계도 긴장 상태였으며, 왕실 재정 문제와 국방력 강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왕실의 수입은 줄어들고 국방력은 약화되었다.

사망 알렉산데르 야기엘론치크는 1506년 8월 19일 크라쿠프에서 자식 없이 사망했다. 그의 동생인 지그문트 1세 스타리가 그 뒤를 이어 폴란드 국왕 겸 리투아니아 대공으로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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