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크룸멜(Alexander Crummell, 1819년 3월 3일 ~ 1898년 9월 10일)은 미국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성직자, 교육자, 학자, 그리고 인권 운동가이다. 그는 19세기 미국의 가장 중요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식인 중 한 명으로, 인종적 자부심, 자립, 그리고 범아프리카주의 사상을 옹호했다.
생애 및 교육
뉴욕에서 태어난 크룸멜은 당시 인종 차별로 인해 정식 교육을 받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끈기 있게 교육 기회를 찾아 원아이다 연구소(Oneida Institute)와 뉴욕주 시러큐스의 베리쉬 신학교(Berish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다. 1844년, 크룸멜은 성공회(Episcopal Church)의 사제로 서품되었으나, 백인 교구에서 목회하는 데 상당한 저항에 부딪혔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그는 더 나은 교육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의를 위한 자금 모금을 위해 1848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는 퀸스 칼리지(Queen's College)에서 공부하며 지적 성장을 이루었다.
라이베리아에서의 활동
1853년,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아프리카 귀환을 주장하는 미국 식민지 협회(American Colonization Society)의 후원을 받아 라이베리아로 이주했다. 라이베리아에서 약 20년간 거주하며 라이베리아 대학(Liberia College)의 설립과 발전에 기여했으며, 현지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아프리카계 민족의 자치와 발전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졌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의 교육과 기독교화를 통해 문명화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피력했다.
미국으로의 귀환 및 후기 활동
1872년 미국으로 돌아온 크룸멜은 워싱턴 D.C.에서 성 루크 성공회 교회(St. Luke's Episcopal Church)를 설립하고 20년 넘게 목회했다. 이 시기에 그는 인종적 자립과 고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많은 연설과 글을 남겼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식인 커뮤니티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1897년 아메리칸 흑인 학회(American Negro Academy)를 공동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학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지적 성취를 증진하고 인종 차별에 맞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유산
알렉산더 크룸멜은 W.E.B. 듀보이스(W.E.B. Du Bois)를 비롯한 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상은 교육을 통한 인종적 진보, 자립, 그리고 전 세계 아프리카계 민족의 연대라는 범아프리카주의의 초기 형태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는 인종적 존엄성과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발전을 위한 길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