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 (세르비아어: Александар Карађорђевић, Aleksandar Karađorđević; 1806년 10월 11일 – 1885년 3월 28일)는 1842년부터 1858년까지 세르비아 공국을 통치한 세르비아의 공작(크네즈)이다. 그는 세르비아 봉기의 지도자이자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의 설립자인 카라조르제 페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의 아들이다.
생애 초기 및 즉위 알렉산다르는 오스만 제국령 토폴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카라조르제가 세르비아 봉기를 이끌었기 때문에,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망명지에서 보냈다. 그는 헝가리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830년대에 세르비아로 돌아와 세르비아군에 복무했다. 1842년, 오브레노비치 왕조의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3세 공작이 통치권을 잃게 되자, 세르비아 의회(스쿠프슈티나)는 알렉산다르를 새로운 공작으로 선출하여 카라조르제비치 왕조를 복권시켰다.
통치 (1842년–1858년) 알렉산다르 공작의 통치 기간은 세르비아의 정치적 안정과 행정 개혁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그의 통치 하에서는 "헌법 수호자들"(Ustavobranitelji)로 알려진 세력이 국가 행정을 주도했으며, 이들은 공작의 권력을 제한하고 입헌 군주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이 시기 동안 세르비아에서는 사법, 행정, 교육 분야에서 중요한 개혁이 추진되었다. 베오그라드 대학교의 전신인 '대 학술원'(Velika škola)이 설립되었고, 세르비아 군대가 현대화되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법전이 제정되었다. 알렉산다르는 내정에서는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했으나, 외정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신중한 외교 정책을 펼쳤다.
퇴위 및 망명 1858년, 오브레노비치 왕조의 복권을 주장하는 세력과 헌법 수호자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알렉산다르의 정치적 입지는 약화되었다. 결국 그는 스쿠프슈티나에 의해 퇴위당했으며, 오브레노비치 왕조의 창시자인 밀로시 오브레노비치 1세가 다시 공작으로 복위되었다. 퇴위 후 알렉산다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현재 루마니아의 티미쇼아라(당시 테메슈바르)에서 1885년에 사망했다.
유산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 공작의 통치 기간은 세르비아가 근대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그의 아들인 페타르 1세 카라조르제비치(Petar I Karađorđević)는 훗날 세르비아의 국왕이 되어 카라조르제비치 왕조를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