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 더글러스흄(Alec Douglas-Home, 본명 알렉산더 프레더릭 더글러스흄, Alexander Frederick Douglas-Home)은 영국의 정치인이다. 1903년 7월 2일 런던에서 태어나 1995년 10월 9일 사망하였다. 보수당 소속으로,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영국의 제66대 총리를 역임하였다.
생애 초기와 가문
더글러스흄은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인 흄 백작가(Earl of Home)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13대 흄 백작 찰스 더글러스흄이었다.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수학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크리켓 선수로도 활동하여, 영국 총리 중 유일하게 퍼스트클래스 크리켓 경기에 출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정치 경력
1931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정치 경력을 시작하였다. 1937년부터는 네빌 체임벌린 총리의 의회 개인 비서로 활동하였다. 1940년 척추 결핵 진단을 받아 정치 활동을 중단하고 수술을 받았다. 1945년 총선에서 의석을 잃었으나 1950년에 다시 당선되었다.
1951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제14대 흄 백작이 되어 상원의원이 되었다. 이후 처칠, 이든, 맥밀런 정부에서 상원의장, 영연방 관계 장관, 외무장관(1960~1963) 등 주요 직책을 역임하였다. 외무장관 재임 중에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을 지지하였고, 1963년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에 영국 대표로 서명하였다.
총리 재임
1963년 10월, 건강 문제로 사임한 해럴드 맥밀런의 뒤를 이어 총리에 취임하였다. 당시 총리는 하원 의원이어야 한다는 관례가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취임 나흘 뒤인 1963년 10월 23일 흄 백작 작위를 사임(disclaim)하고 하원 의원으로 재선출되었다. 이는 1963년 제정된 귀족법(Peerage Act 1963)에 따라 가능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총리가 된 과정은 논란이 많았다. 일부 보수당 각료들은 그의 총리 취임을 거부하고 사퇴하기도 하였으며, 노동당의 해럴드 윌슨은 그를 "우아한 시대착오(elegant anachronism)"라고 비판하며 귀족 출신 총리가 일반 가정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가장 주목할 만한 국내 입법은 소매 가격 유지 제도(Resale Price Maintenance)의 폐지였다. 이 법안은 소비자 가격 인하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적으로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이 그의 임기 중 발생하였다.
1964년 10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노동당에 근소한 차이로 패배함에 따라 총리직을 사임하였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은 363일로, 20세기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짧은 재임 기간이었다.
이후 경력
총리직 사임 후에는 야당 당수를 지냈으며, 보수당의 당수 선출 방식을 비밀 투표 방식으로 개혁한 뒤 1965년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1970년부터 1974년까지 에드워드 히스 정부에서 외무영연방장관을 역임하였다. 1974년 히스 정부의 패배 이후 정계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같은 해 종신 귀족 작위를 받아 히슬의 흄 남작(Baron Home of the Hirsel)이 되어 상원으로 복귀하였다.
평가
더글러스흄의 명성은 짧았던 총리 재임 기간보다는 두 차례에 걸친 외무장관 재임 기간에 기반한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침착한 대응,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 체결, 그리고 냉전 시기 소련에 대한 강경하면서도 실용적인 외교 정책 등이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사후에는 회고록 『바람이 부는 길(The Way the Wind Blows)』(1976) 등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는 1995년 10월 9일 스코틀랜드 버릭셔에서 9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