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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

안향(安珦, 1243년~1306년 9월 12일)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교육자이다. 초명은 안유(安裕)였으며,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본관은 순흥(順興),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경상북도 흥주(지금의 영주시 풍기) 출생이다.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랑, 직한림원 등을 거쳐 관직에 진출하였다. 1270년 삼별초의 난 때 강화에 억류되었다가 탈출하였고, 이후 감찰어사, 상주판관, 국자사업 등을 역임하였다.

안향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한반도에 성리학(주자학)을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1289년(충렬왕 15)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갔을 때 주자(朱熹)의 저술을 손수 베껴 오고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그려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1303년에는 김문정을 중국 강남에 보내 공자와 70제자의 화상, 문묘 제기·악기 및 경서 등을 구해오게 하였다. 또한 1304년에는 섬학전(贍學錢)이라는 장학기금을 마련하여 국자감 운영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대성전(大成殿)을 완성하여 유교 교육 체계를 정비하는 데 기여하였다.

안향은 무신집권과 원나라 간섭이라는 국내외적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주자학을 수용하였으며, 이는 이후 조선 시대 유교 정치사상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1318년(충숙왕 5) 왕이 원나라 화공에게 명하여 안향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고, 이듬해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후에 소수서원)을 세워 안향을 기렸으며, 이 서원은 이후 명종의 친필 사액을 받았다. 안향의 초상화는 대한민국 국보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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