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 이용 집터는 조선 전기의 왕자이자 서화가인 안평대군 이용(李瑢, 1418~1453)의 사저가 있었던 터를 지칭한다. 공식 문화재 지정 명칭은 '안평대군집터'(安平大君集터)이며, 1976년 4월 1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
1. 역사적 배경 안평대군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자 그림 애호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집은 당시 한성부 관인방(寬仁坊) 계동(桂洞,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일대)에 위치했으며, 당호(堂號)는 '비해당(匪懈堂)'이라 불렸다. 이곳은 안평대군이 소장하던 수많은 서화와 책들을 보관하고, 당대 문인들과 교유하며 시문과 예술을 논하던 문화적 거점이었다.
2. 주요 연혁 및 사건
- 꿈속의 도원(몽유도원도): 1447년(세종 29) 안평대군은 비해당에서 꾼 꿈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 화가 안견(安堅)에게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리게 하였다. 이 그림은 안평대군 집터의 문화사적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 계유정난과 몰수: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훗날 세조) 일파에 의해 안평대군이 사사된 후, 그의 집은 관가로 몰수되었다.
- 후대 변천: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의 소유가 되었다가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거치며 건물은 멸실되고 터만 남게 되었다.
3. 위치 및 현황
- 지정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140-1번지 일대
- 현상: 현재 당시의 건물은 남아 있지 않으며, 1976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안평대군집터' 표석(標石)이 세워져 위치를 알리고 있다. 주변은 도시형 한옥 및 주거지로 변모하였으나, 인근에 안평대군과 관련된 지명(비해당길 등)과 문화유산(안평대군 사당 등)이 산재해 있다.
4. 의의 안평대군 이용 집터는 15세기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간이자, 《몽유도원도》 제작의 산실로서 한국 미술사 및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