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 학파(ἡ σχολὴ τῆς Ἀντιοχείας, School of Antioch)는 고대 후기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의 터키 안타키아)를 중심으로 2세기부터 7세기까지 활동한 초기 기독교 신학 전통 가운데 하나이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더불어 초기 교회의 두 주요 신학파로 꼽힌다.
어원과 명칭: 학파의 명칭은 고대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였던 안티오키아(그리스어: Αντιόχεια)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어로는 '안디옥 학파'로도 표기된다.
성경 해석 방법: 안티오키아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초하여 역사적·문자적(literal) 성경 해석을 강조하였으며, 예표론적(typological) 해석을 중시하였다. 이는 알레고리(우의적) 해석을 선호하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대비되는 특징이다.
그리스도론(기독론): 안티오키아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구별을 강조하였다.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결합(conjunctio)되었으나 두 본성의 구별은 그대로 존속한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두 본성의 융합을 주장하였다.
시기별 구분과 주요 인물: 안티오키아 학파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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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170년~4세기):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로스(169~188년 주교), 이메사의 에우세비우스, 카이사리아의 아카키우스, 헤라클레아의 테오도로스 등이 있다. 사모사타의 바오로(260~268년 안티오키아 주교)는 철저한 유일신론을 주장하다가 268년 안티오키아 교회 회의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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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350~433년): 타르수스의 디오도루스(안티오키아 학파를 유명한 성서 학파로 만든 인물),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 네스토리우스(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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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433년 이후):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네스토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이 단죄된 이후 학파의 위상이 크게 약화되었다.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의 입장이 절충되었으나, 이후 안티오키아 학파는 신학적으로 고립되었다.
신학적 특징: 안티오키아 학파는 히브리적 사상의 영향을 받아 강한 유일신론을 견지하였으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질적 차이를 강조하였다.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라고 보았다.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구원을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함으로써 이해한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그리스도 인성의 완전한 순종에서 구원의 동기를 찾았다.
역사적 의의: 안티오키아 학파는 후일 이단으로 규정된 신학적 입장들(네스토리우스주의, 아리우스주의 등)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확립하고 역사적 성경 해석 방법론을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 간의 대립과 논쟁은 초기 교회의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 교리 체계를 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