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라파엘 멩스(Anton Raphael Mengs, 1728년 3월 12일/22일 ~ 1779년 6월 29일)는 보헤미아(현재 체코)의 우스티나트라벰에서 태어난 독일의 화가이자 미술 이론가이다. 그의 아버지 이스마엘 멩스(Ismael Mengs)는 덴마크 출신의 화가로 작센 선제후의 궁정 화가였으며, 아들은 엄격한 교육 아래 드레스덴에서 미술 수업을 시작했다.
1741년부터 1744년까지 가족과 함께 로마에 머물며 고전 고대 유물과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을 연구했다. 이 시기 마르코 베네피알(Marco Benefial)의 학교에서 인체 소묘를 배웠다. 드레스덴으로 돌아온 후 파스텔 초상화를 제작했으며, 1745년 작센 선제후의 궁정 화가로 임명되었다. 1749년 루터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같은 해 마르가리타 구아치(Margarita Guazzi)와 결혼했다.
1751년 작센 궁정의 수석 화가로 임명되었으나 곧 로마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1755년 신고전주의 이론가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을 만나 친교를 맺었으며, 이는 그의 예술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멩스는 고전 고대와 라파엘로에게서 데생과 표현을, 코레조에게서 명암법과 우아함을, 티치아노에게서 색채 감각을 취하는 절충적 이론을 발전시켰다.
1761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의 초청으로 마드리드로 건너가 궁정 화가로 활동했다. 마드리드 왕궁의 연회장 천장화 《트라야누스의 승리와 영광의 신전》, 로마 빌라 알바니의 프레스코화 《파르나소스》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초상화 영역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스페인 왕실 가족과 여러 인물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그의 미술 이론 저서로는 《회화에서의 아름다움과 취향에 관한 생각》(Gedanken über die Schönheit und über den Geschmak in der Malerey, 1762)과 《마드리드 미술 아카데미에 관한 논고》(Ragionamento su l'Accademia delle Belle Arti di Madrid, 1766) 등이 있다. 바티칸 회화 학교의 교장을 역임했으며, 로마의 산 루카 아카데미와 마드리드의 산 페르난도 아카데미에서 개혁적인 교육 활동을 펼쳤다.
멩스는 바로크와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핵심적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라파엘로, 코레조, 티치아노 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고전 고대에 대한 빙켈만의 열정을 공유하며 신고전주의 회화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했다. 동시에 로마 바로크의 영향 또한 그의 작품, 특히 종교화에서 강하게 남아 있다. 미술사가 루돌프 비트코워(Rudolf Wittkower)는 그를 "시작만큼이나 끝"이라고 평가했으며,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그렇게 많은 학문이 창의성의 총체적 결핍과 발명의 빈곤과 결부되어 긴장되고 인위적인 매너리즘으로 구체화되었다"고 평한 바 있다.
1777년 마드리드에서의 두 번째 체류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왔으며, 1779년 6월 29일 로마에서 사망하여 산티 미켈레 에 마뇨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의 제자로는 프란시스코 바예우(Francisco Bayeu), 마리아노 살바도르 마엘라(Mariano Salvador Maella), 아구스틴 에스테베(Agustín Esteve) 등이 있으며,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도 멩스의 소환으로 마드리드 궁정에서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