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라마자레스(Antón Lamazares, 1954년 1월 2일 ~ )는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출신의 화가이다. 조세 마리아 시칠리아(José María Sicilia), 미켈 바셀로(Miquel Barceló), 빅토르 미라(Víctor Mira)와 함께 스페인 '80년대 세대'('generación de los 80')의 일원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나무와 판지의 표면에 니스와 여러 물질을 사용하여 고유한 미술적 언어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기의 유희적 표현주의에서 출발하여 이후 추상적 표현주의와 추상주의를 거쳐 최근에는 미니멀리즘적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생애와 배경
라마자레스는 1954년 1월 2일 스페인 폰테베드라(Pontevedra) 주 라린(Lalín)의 마세이라(Maceira)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초등교육 대부분은 헤본(Herbón)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신학교(1963~1969)에서 이루어졌으며, 이곳에서 그리스·로마 고전 문학을 주로 공부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이후 그의 예술적 발전에 영향을 준 작가 알바로 쿤케이로(Álvaro Cunqueiro)와 화가 라셰이로(Laxeiro), 마누엘 페스케이라(Manuel Pesqueira) 등과 교류하였다.
1972년경 유럽을 장기간 여행하며 방 고흐, 파울 클레, 렘브란트, 호안 미로 등 대가들의 작품을 직접 감상했다. 이후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àpies),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마놀로 미야레스(Manolo Millares),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작업과 중세 미술, 오세아니아 미술 등을 학습하였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건설 인부로 일하며 마레스 박물관과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의 로마네스크 미술 작품들을 연구했다. 마드리드에서는 스승 라셰이로와 재회하고 시인 카를로스 오로사(Carlos Oroza)를 알게 되었다. 시와 회화의 교차는 이후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이다.
1973년, 19세의 나이에 개인전과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다. 1975년 해군에 징집되어 페롤(El Ferrol)에서 복무하던 중, 프랑코 정권 하에서의 마지막 처형 중 한 명이 자신의 동향 친구인 움베르토 바에나(Humberto Baena)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으로 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시집 『아디발(Adibal)』을 쓰게 되었다.
작품 활동의 전개
1978년 마드리드로 이주한 라마자레스는 화가 알폰소 프레일(Alfonso Fraile), 갤러리스트 후아나 모르도(Juana Mordó), 미술평론가 산티아고 아몬(Santiago Amón) 등과 교류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80년대에는 마드리드의 후아나 모르도 갤러리, 벨기에의 엘리자베스 프랑크 갤러리, 바르셀로나의 살라 가스파르 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이후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으로 뉴욕에서 2년간 체류하며 브루노 파체티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더욱 순수하면서도 물질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88년에는 호르더린(Hölderlin)의 『히페리온』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아나톨리아의 디디마(Didyma) 신전을 방문하고 이스탄불의 비잔틴 교회들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1990년에는 양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쌍면(bifacial)' 작품 시리즈를 준비했다.
1990년대 초반 파리의 시테 데 자르(Cité des Arts)에서 체류하며 작업했고, 1991년에는 마드리드에 대형 스튜디오를 열고 『방황하는 은총(Gracias vagabundas)』과 『방랑자의 불안(Desazón de vagabundos)』 두 작품전을 준비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타피에스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1996년 갈리시아 현대미술관의 초청으로 갈리시아에서 『장소의 매력: 로살리아의 들판, 바마의 들판(Gracias do lugar: Eidos de Rosalía, Eidos de Bama)』을 제작했다. 1998년에는 마드리드에서 『티타니아와 브라오(Titania e Brao)』와 『폴 엔 아델란(Pol en Adelán)』 시리즈를 완성했다.
2001년 아코루냐 항구에서 『딱딱한 빵 한 자루(Un saco de pan duro)』라는 제목의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다. 같은 시기 스페인 외교통상부의 '스페인 미술의 국제화(Spanish Art for the Outside World)' 프로그램을 통해 사우라, 치리노, 오테이사, 타피에스 등과 함께 그의 작품이 국제적으로 홍보되었다.
2004년부터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거주하고 있다. 부친상을 당한 직후 『불 속에서 추위(E fai frío no lume)』 시리즈를 제작했으며, 이후 『도무스 옴니아(Domus Omnia)』 시리즈와 일련의 인쇄 예술품(판화, 리소그래프 등)을 제작했다.
주요 전시와 수상
라마자레스의 작품은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갈리시아 현대미술관, 마드리드 현대미술관, 일본 마루가메 히라이 미술관(Marugame Hirai Museum) 등 유수의 기관과 여러 재단, 개인 소장가에 의해 소장·전시되고 있다. 2008년에는 요르단 국립미술관(암만)에서 『주인 없는 지평선(Horizonte sin dueño)』을 전시했고,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세르반테스 연구소에서 판화 작품집을 전시했다. 2009년에는 뉴욕의 소피아 왕비 스페인 연구소(Queen Sofía Spanish Institute)와 스페인 오렌세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국제적 명성과 전 생애에 걸친 창작활동에 대한 공로로 라셰이로 상(Laxeiro Prize)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카스텔라오 메달(Medalla Castelao)을 수여받았다. 2010년 5월 20일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학교가 수여하는 명예 훈장(Insignia de Oro)을 받았다. 이는 6세기 만에 예술가에게 수여된 첫 사례로 알려져 있다.
작품 세계의 특징
라마자레스의 작품 세계는 시기별로 변화를 보여 왔다. 초기에는 강렬한 채색과 유희적이고 몽환적인 형태의 표현주의적 성격이 두드러졌고, 이후 물질의 표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의 그림은 나무나 판지 같은 소박한 재료 위에 니스를 비롯한 다양한 물질을 겹겹이 칠하며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이 점에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적 성격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논의된다. 후기로 갈수록 추상성과 미니멀리즘적 경향이 강해졌으며, 시와 꿈, 영성과 감각, 기억과 영혼의 대화를 주요 주제로 삼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술평론가 프란시스코 칼보 세랄레르(Francisco Calvo Serraller)는 라마자레스의 작업을 두고 "무지(無知)하고 '순진한' 재료와 몸짓에 대한 거칠지만 깊은 애정"을 지닌 지적·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한 예술가라고 평한 바 있다.
2010년에는 그의 시각으로 미술과 시, 자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주인 없는 지평선(Horizonte sin dueño)』이 나이라(Nayra)·하비에르 산스(Javier Sanz) 형제(리노세론테 필름스) 감독에 의해 제작되어 투이(Tui) 국제 영화제 플레이독(Play-Doc)에서 상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