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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니아누스

안토니니아누스(Antoninianus)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 사용된 은화(銀貨)로, 서기 215년 카라칼라 황제(Caracalla, 재위 211~217년)에 의해 도입되었다. 명목상 2데나리우스(denarius)의 가치를 지녔으며, 데나리우스보다 약간 크기가 더 큰 것이 특징이다.

도입 당시 안토니니아누스는 은 함량이 데나리우스의 약 1.5배에 불과하여 실제 내재 가치는 액면가보다 낮았다. 이로 인해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에 따라 악화(惡貨)인 안토니니아누스가 양화(良貨)인 데나리우스를 유통에서 밀어내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였다.

동전의 앞면에는 황제가 태양관(radiate crown)을 쓰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어 2배의 액면가를 나타냈으며, 여성(주로 황후)을 묘사할 때는 초승달 위에 위치한 상체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보통 지름은 약 22mm, 무게는 약 4g 정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로마 제국의 은광 고갈, 정복 활동 중단으로 인한 은 수급난, 군인 황제들의 잦은 발행 등으로 인해 안토니니아누스의 은 함량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갈리에누스(Gallienus, 재위 253~268년) 시기에는 은동 합금(billon)으로 주조되었고, 3세기 말에는 청동으로 거의 전부 대체되었다. 서기 271년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 재위 270~275년)가 평균 무게를 늘리고 뒷면에 XXI 표식을 도입하였으나(은 비율 약 5%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 이 역시 일시적 조치에 그쳤다.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의 화폐 개혁을 기점으로 새로운 단위의 주화들이 도입되면서 안토니니아누스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현대의 화폐학자들은 이 동전을 "안토니니아누스"로 부르지만, 이 명칭이 고대에 실제로 사용된 명칭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명칭은《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역사적 신뢰성이 낮은 문헌)에서 '안토니누스'(Antoninus)라는 이름을 딴 은화에 대한 언급과, 카라칼라가 즉위 후 자신의 이름에 '안토니누스'를 포함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안토니니아누스 주화는 흔히 발견되는 편이며, 극소수 희귀한 예외(아이밀리아누스, 마리우스, 퀴에투스 등)만이 높은 수집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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