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나나리보(말라가시어: Antananarivo, 문화어: 안따나나리부)는 마다가스카르 공화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프랑스어 명칭인 타나나리브(Tananarive) 또는 줄여서 타나(Tana)라고도 불린다. 마다가스카르섬의 거의 중앙에 위치한 고원 지대(해발 약 1,276m)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섬나라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에 해당한다.
역사
안타나나리보는 원래 바짐바(Vazimba)족이 거주하던 아날라망가(Analamanga, 말라가시어로 "푸른 숲"이라는 뜻)라는 지역이었다. 17세기 초, 메리나 왕국의 안드리안자카 왕(1612~1630 재위)이 동남부 해안에서 메리나인들을 이끌고 이주하여 이곳에 정착하고 요새화된 왕릉(로바)을 세웠다. 구전에 따르면 안드리안자카 왕이 1천 명의 군사로 이 지역을 장악한 데서 유래하여, 후대 왕인 안드리아마시나발로나(1675~1710 재위)에 의해 "안타나나리보"(말라가시어로 "천의 도시"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710년 안드리아마시나발로나 왕 사후 메리나 왕국은 분열되었고, 안타나나리보는 남부의 수도가 되었다. 77년간의 내전 끝에 1793년 안드리아남포이니메리나 왕이 안타나나리보를 재정복하여 메리나 왕국을 재통일하였고, 1794년 이 도시를 왕국의 정치적 수도로 삼았다.
1810년 즉위한 라다마 1세 시기 안타나나리보는 약 8만 명의 인구를 가진 주요 경제 도시로 성장하였다. 라다마 1세는 유럽인 정착자와 런던선교협회(LMS) 선교사들에게 도시를 개방하였고, 1820년 첫 공립학교가 세워졌다. 1867년 여러 차례 화재를 겪은 후 라나발로나 2세 여왕은 돌과 벽돌로 집을 짓도록 하는 칙령을 내렸고, 이후 영국식·크레올식·말라가시 디자인이 혼합된 2층 벽돌집(트라노 가시, trano gasy)이 도시 전역에 확산되었다.
1894년 9월 프랑스에 점령되었고, 1896년 완전히 프랑스 식민지가 된 후에도 수도 기능을 유지하였다. 프랑스는 이 도시를 타나나리브(Tananarive)로 불렀다. 1929년 5월에는 프랑스 식민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는 급속히 팽창하였으며, 1960년 마다가스카르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지리 및 기후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안타나나리보는 아열대 고원기후(Cwb)에 속한다. 온난하고 건조한 겨울(6~7월)과 따뜻하고 비가 많은 여름(12~1월)이 특징이며, 강수량의 대부분은 11월에서 4월 사이에 집중된다. 연평균 기온은 약 19.6°C이다.
행정 및 인구
안타나나리보는 안타나나리보 주의 행정 중심지이다. 2005년 추산 인구는 약 161만 명이었으며, 2013년 기준 약 21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역사적으로 메리나인의 수도였으며, 현재도 도시민의 대부분은 메리나인이 차지한다. 그 외에 마다가스카르의 다른 민족과 중국인, 인도인, 유럽인 등 외국인도 거주하고 있다.
경제 및 교통
안타나나리보는 마다가스카르 경제의 중심지이다. 도시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이바토 공항(Ivato Airport)이 위치하며, 에어 마다가스카르의 허브 공항으로 기능한다. 프랑스 통치기인 1897년 건설된 소아라노(Soarano) 역에서 동쪽의 항구 도시 토아마시나(Toamasina)와 남쪽 내륙 도시 피아나란초아(Fianarantsoa)로 연결되는 철도가 운행된다.
주요 건축물 및 관광지
주요 건축물 및 관광지로는 최근 복원된 왕궁(로바, Rova), 안다피아바라트라 궁(Andafiavaratra Palace), 라이니하로 묘지, 침바자자 동물원, 마하마시나 운동장, 아노시 호(Lake Anosy), 19세기 대성당, 예술 고고학 박물관 등이 있다. 프랑스 구 총독부 건물은 현재 대통령궁(암보히초로히트라 궁, Ambohitsorohitra Palace)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안
최근 도시화와 함께 급속한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교통, 쓰레기 처리, 환경오염, 치안, 상수도, 전력 공급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