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나씨(安定羅氏)는 대한민국의 성씨 가운데 하나로,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토착 성씨이다. 한자 표기는 羅(나)이며, 두음 법칙에 따라 '라' 대신 '나'로 표기된다.
시조는 나천서(羅天瑞)이다. 고려 공민왕 때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匡 門下侍中)을 지냈으며, 안천군(安川君)과 안정백(安定伯)에 봉작되었다. 1370년(공민왕 19) 이성계가 요동의 동녕부를 정벌하고 귀환할 때, 추위와 기근으로 아사지경에 이른 약 1만 5천여 명의 군사를 수백 석의 양곡을 조달해 구휼한 공로가 기록으로 전한다. 이후 안정현(安定縣)을 식읍으로 받아 안정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가 망한 뒤에는 아들과 함께 고향인 안정으로 퇴거하여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켰다고 전한다.
본관지인 안정은 신라 시대에 아시혜(阿尸兮) 또는 아을혜(阿乙兮)로 불렸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안현현(安賢縣)으로, 940년(고려 태조 23) 안정현(安定縣)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421년(세종 3) 비옥현과 합쳐져 안비현(安比縣)이 되었고, 1423년(세종 5) 비안(比安)으로 고쳐졌다.
주요 인물로는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여 병조판서에 추증된 나사종(羅嗣宗), 조광조의 문인으로 을사사화 때 화를 입은 나식(羅湜), 임진왜란 무렵 활약한 나급(羅級)과 그 아들로 병자호란 때 군량 공급에 공을 세운 나만갑(羅萬甲), 어영대장·삼도통제사를 지낸 나홍좌(羅弘佐) 등이 있다.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16명을 비롯하여 다수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안정 나씨는 나주 나씨나 금성 나씨와 계통상 구분되는 별도의 성씨 계열로 알려져 있다. 일부 자료에서는 시조 나천서가 나주 나씨 또는 금성 나씨의 시조와 후손이 아니라고 안정나씨 대종회에서 밝히고 있다는 내용이 전한다.
2015년 통계청 인구 조사 기준으로 안정 나씨의 인구는 8,934명으로 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