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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 3호분

안악 3호분(安岳 3號墳)은 북한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위치한 고구려 시대의 벽화고분이다. 고구려 고분군의 일부로,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구려 고분군'에 포함된다. 북한의 국보 제67호로 지정되어 있다.

발견과 연대

이 고분은 1949년에 처음 발견되었으며, 발견 당시 이미 대부분의 부장품이 도굴된 상태였다. 다만 벽화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었다. 고분 내부에서 발견된 '영화 13년(永和十三年)'이라는 묵서명을 근거로, 이는 동진(東晉)의 연호로 서기 357년(고국원왕 27년)에 해당하여 고분의 축조 시기가 357년으로 추정된다. 이는 연대가 확실하게 확인된 가장 오래된 고구려 벽화고분 중 하나로 평가된다.

구조

안악 3호분은 현무암과 석회암의 큰 판석으로 짜여진 돌방무덤(석실분)이다. 남쪽에서부터 널길(羨道), 연실(羨室), 앞방(前室), 뒷방(後室·주실)으로 구성되며, 앞방 좌우에 작은 옆방(측실)이 하나씩 달려 있다. 앞방과 뒷방은 4개의 팔각 돌기둥으로 구분된다. 각 방의 천장은 네 귀에 삼각형 돌을 얹어 천장 공간을 좁히는 방식을 두 번 반복한 뒤 뚜껑돌을 얹는 모줄임천장(抹角藻井)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는 한국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모줄임천장으로 알려져 있다.

벽화

벽화는 벽면 약 81㎡, 천장 약 58㎡에 걸쳐 그려져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널길 벽의 위병(衛兵), 앞방 동쪽 옆방의 부엌·도살실·우사·차고 등 생활 공간 묘사, 서쪽 옆방의 주인공 내외의 좌상(坐像), 앞방 남벽의 무악의장도(舞樂儀仗圖)와 묵서묘지(墨書墓誌), 뒷방 동벽·서벽의 무악도(舞樂圖), 회랑 벽의 대행렬도(大行列圖) 등이 있다. 특히 회랑에 그려진 대행렬도는 고구려 왕의 백라관(白羅冠)을 쓴 주인공이 문무백관, 악대, 무사 등 250여 명의 인물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아가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벽화는 회를 칠하지 않고 돌벽 위에 직접 그려졌으며, 당시 고구려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묘주(墓主) 논란

안악 3호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고분 입구 왼쪽의 장하독(帳下督) 그림 위에 쓰인 묵서에는 '동수(冬壽)'라는 인물이 기록되어 있다. 동수는 336년(고국원왕 6년)에 요동(遼東)에서 고구려로 망명한 무장으로, 357년(고국원왕 27년)에 69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묘주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동수의 무덤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고구려 왕(고국원왕 또는 미천왕)의 무덤이라는 설이다. 동수묘설은 묵서명과 중국식 묘제 구조를 근거로 하며, 한국 학계와 국제 학계에서 비교적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면 북한 학계를 중심으로 한 왕릉설은 무덤의 규모와 대행렬도 등 왕에 준하는 격식을 근거로 하며, 묵서가 묘주가 아닌 장하독의 머리 위에 쓰여 있다는 점을 들어 동수는 묘주가 아니라 묘주를 보좌하던 장하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현재까지 완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의의

안악 3호분은 고구려 벽화고분의 발생 과정에서 중국 벽화고분과 고구려 벽화고분을 연결하는 과도기적 존재로 평가된다. 묘실 평면, 모줄임천장, 돌기둥, 벽화 내용 등 여러 측면에서 이후 고구려 벽화고분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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