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안서절도사

안서절도사(安西節度使)는 중국 당나라가 서역(西域)의 천산남로(天山南路)에 위치한 안서사진(安西四鎭)을 방어하고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절도사 직책이다. 안서사진절도사(安西四鎭節度使) 또는 사진절도사(四鎭節度使)라고도 하며, 당 현종(玄宗) 대의 천보 10절도사(天寶十節度使)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설치 및 변천

712년(당 현종 태극 1년/선천 1년) 9월, 안서도호(安西都護)가 사진(四鎭)의 경략대사(經略大使)를 겸하며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위치한 구자(龜茲,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쿠처현)에 주둔하면서 비롯되었다.

718년에는 부도호(副都護)가 적서절도사(磧西節度使)를 겸하며 서주(西州)에 주둔하였다. 727년에 이서절도사(伊西節度使)로 개칭되었다가, 731년에는 북정절도사(北庭節度使)와 합병되어 안서사진북정절도사(安西四鎭北庭節度使)가 되었다. 741년에 다시 북정절도사와 안서사진절도사로 분리되었다.

안서사진절도사는 서역을 안무(安撫)하고, 구자(龜茲)·소륵(疏勒)·우전(于闐)·언기(焉耆)의 4진(四鎭)과 안서도호부를 관할하였으며, 약 24,000명의 병력을 거느렸다.

757년(당 숙종 지덕 2년)에 진서절도사(鎭西節度使)로 개칭되었고, 767년(당 대종 대력 2년)에 다시 안서절도사로 명칭을 되돌렸다. 790년경 안서 지역이 토번(吐蕃)에게 함락되면서 사실상 소멸하였고, 이후 경원절도사(涇原節度使)가 영안서도호(領安西都護)를 겸하였다.

역대 안서절도사

대표적인 역대 안서절도사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다.

  • 곽건관(郭虔瓘, 715년 ~ ?)
  • 부몽령찰(夫蒙靈詧)
  • 고선지(高仙芝, 747년 ~ 752년) - 고구려 유민 출신의 장수로, 탈라스 전투를 지휘하였다.
  • 봉상청(封常淸, 752년 ~ 756년)
  • 이공(李珙, 756년)
  • 위백옥(衛伯玉, 759년 ~ ?)
  • 마린(馬璘, 763년 ~ ?)
  • 곽흔(郭昕, 781년)

의의

안서절도사는 당나라가 서역을 통치하고 돌궐·토번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설치한 중요한 군정(軍政) 기구였다. 안사의 난(安史之亂, 755~763년) 이후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서역 방어선이 축소되면서 쇠퇴하였으며, 790년대 안서 지역이 토번에 점령되면서 당나라의 서역 지배는 종말을 맞이하였다.

참고 문헌

  • 《신당서(新唐書)·방진표(方鎭表)》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