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부령(安山副令)은 조선시대 왕족에게 수여된 봉작(封爵)의 하나로, '안산'이라는 지명(地名) 또는 봉호(封號)에 종5품 작위명인 '부령(副令)'이 결합된 형태의 호칭이다. 이 명칭은 실제 역사적 기록에 존재하며, 특히 조선 중기의 왕족 이득길(李得吉, 1612년~?년)이 "안산부령"에 봉작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개요
'부령(副令)'은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 소속의 종5품 봉작명이다. 이 명칭은 원래 고려시대부터 일반 관서의 관직으로 존재했으나, 1414년(태종 14) 관제 개정에서 일반 관서의 부령이 소윤(少尹)으로 개칭되면서 이후에는 종친부에만 존속하게 되었다. 조선 세조 때 종친 봉작을 세분화하면서 종4품 부령을 두었다가, 이후 정5품과 종5품으로 조정되었고, 『경국대전』에는 종5품 부령으로 규정되었다.
종5품 부령은 왕족의 후손 가운데 특정 지위에 있는 인물이 처음 받는 봉작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왕자군(王子君)의 중손(衆孫) 형제 또는 그보다 아래 세대의 서자(庶子) 계열에게 주어졌다. 부령은 실무 직무가 없는 명예직으로, 왕의 유복친(有服親)에게 명예와 부를 허락하는 대신 정치 활동을 제한하려는 의도에서 수여되었다.
안산부령 이득길
안산부령으로 봉작된 대표적 인물은 이득길(李得吉)이다. 그는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종실 연성수(蓮城守) 이복령(李福齡)이며, 연성수의 8남으로 1612년(광해군 4)에 태어났다.
이득길은 1639년(인조 17) 6월 안산부령에 봉작되었고, 이후 근절랑(謹節郞) 안산부령으로 불렸다. 부인은 안동인 김정(金精)의 딸인 순인(順人) 안동김씨이다. 사후 묘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동 담방리 산록에 조성되었다.
제도적 변천
부령은 1869년(고종 6) 1월 종친 관제 개정 시 부정(副正)·수(守)·부수(副守)·령(令) 등과 함께 폐지되었고, 그 자리에는 주부·직장·부직장·봉사·부봉사·참봉 등의 관직이 신설되었다.
참고
-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등에 부령 제도가 규정되어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실록위키 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관련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안산부령은 조선시대 왕족 봉작 제도의 하나로 실존하는 역사적 명칭이며, 특정 인물의 호칭으로도 사용된 사례가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