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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희


안두희

안두희(安斗熙, 1917년 3월 24일 ~ 1996년 10월 23일)는 대한민국의 군인, 기업인으로, 백범 김구를 암살한 인물로 한국 현대사에 기록된 역사적 인물이다. 본관은 순흥 안씨이며, 평안북도 용천 출신이다.

인적 배경

안두희는 평안북도 용천에서 지주 안병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덕희(德熙)였으나 이후 두희(斗熙)로 개명하였다. 1934년 신의주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으나 3학년 때 중퇴한 뒤 중국 등지에서 상업 활동을 하였다. 이 기간 중에는 강두희(姜斗熙)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947년 북한에서 지주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월남하여 서북청년회에 가입하였고, 1948년 육군사관학교 특8기에 입교하여 이듬해 졸업 후 포병사령부 연락장교 소위로 복무하였다.

김구 암살 사건

1949년 6월 26일, 안두희는 서울 경교장에 위치한 백범 김구의 자택에서 권총으로 김구를 암살하였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백범 김구 암살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건 직후 안두희는 특무대에 연행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약 3개월 뒤 15년으로 감형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포병 장교로 복귀하였다. 1953년에는 완전 복권되어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김구 암살의 배후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제기되었으나 명확히 규명되지는 않았다. 당시 육군 정보기관(특무대)의 김창룡과의 연계, 이승만 정권 및 군부와의 결탁 의혹 등이 제기되었으나, 1992년 안두희 자신은 김구 암살에 직접적인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당시 군·경찰 간부들의 강력한 암시를 받아 공감한 뒤 범행했다고 진술하였다. 암살 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으며, 관련 의혹은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다.

이후 생애

안두희는 김구 암살 이후 여러 차례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 1960년 4·19혁명 이후에는 김구 암살 진상규명 운동이 전개되면서 가명(안영준)을 사용하며 은신 생활을 하였다. 1987년에는 김구 암살 사건 진상규명을 추적해온 권중희에게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폭행당하며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사망

1996년 10월 23일, 안두희는 인천 중구 신흥동의 자택에서 버스 운전기사였던 박기서가 휘두른 몽둥이('정의봉')에 맞아 사망하였다. 박기서는 평소 백범 김구를 존경해 안두희를 응징하려 했다고 밝혔으며, 범행 동기가 참작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가 1998년 3·1절 특별사면 직후 석방되었다. 안두희의 시신은 화장되어 한강에 뿌려졌다.

평가와 의의

안두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독립운동 지도자 김구를 암살한 인물로서, 한국 현대사에서 극도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의 범행과 관련한 배후 세력, 범행의 지시 경위 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완전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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