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스 셀시우스 (Anders Celsius, 1701년 11월 27일 ~ 1744년 4월 25일)는 스웨덴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이다. 그는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섭씨 온도 눈금(Celsius scale)의 창시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웁살라 대학교의 천문학 교수로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쳤다.
생애 및 교육 셀시우스는 1701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했는데, 할아버지는 유명한 수학자였고 아버지도 천문학 교수였다. 그는 웁살라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730년에 같은 대학의 천문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저명한 천문학자들과 교류하고 여러 천문대를 방문하며 견문을 넓혔다.
주요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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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온도 눈금의 고안: 셀시우스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섭씨 온도 눈금의 고안이다. 1742년에 그는 대기압 하에서 물의 어는점을 100도로, 끓는점을 0도로 정하는 온도 눈금을 제안했다. 이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섭씨 눈금과는 반대되는 방식이었다. 이후 그의 동료이자 식물학자인 카를 폰 린네(Carl Linnaeus) 등이 이 눈금을 현재 우리가 아는 방식, 즉 물의 어는점을 0도로, 끓는점을 100도로 바꾸어 역전시켰다. 그의 이름을 따 이 눈금은 '셀시우스' 또는 '섭씨'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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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분야: 셀시우스는 천문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공헌을 했다. 그는 웁살라에서 오로라를 관측하고 기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316회에 달하는 오로라 관측 기록을 남겼다. 또한,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피에르 모페르튀(Pierre Louis Maupertuis)가 이끄는 측정 원정대에 참여하여 지구의 극지방 평탄도를 측정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뉴턴의 지구가 완벽한 구형이 아니라 극에서 약간 편평하다는 이론을 입증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는 웁살라 천문대를 설립하고, 여러 항성의 밝기를 측정하며,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와 관련된 연구도 수행했다.
말년 및 유산 셀시우스는 1744년 4월 25일 웁살라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그의 업적은 과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가 고안한 온도 눈금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표준이 되었으며, 그의 천문학적 관측과 연구는 당대 과학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달의 분화구 중 하나가 그의 이름을 따 '셀시우스(Celsius)'로 명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