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침(樂綝, ?~257년)은 중국 후한 말기에서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장수이다. 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위나라의 명장 악진(樂進)의 아들이다.
생애
악침은 아버지 악진이 사망한 후 그 작위와 지위를 이었다. 《삼국지》 악진전에 따르면, 악침은 과단성이 있고 굳세어 아버지의 풍도를 갖추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관직은 양주자사(揚州刺史)에까지 올랐다.
255년, 관구검(毌丘儉)과 문흠(文欽)이 함께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사마사(司馬師)는 사마련(司馬璉)에게 기병을 이끌고 문흠군의 측면을 공격하게 하고, 악침은 보병을 이끌고 후방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다.
257년, 제갈탄(諸葛誕)이 사공(司空)에 임명되면서 그의 군사가 악침에게 귀속되게 되었다. 제갈탄은 자신이 왕창(王昶)보다 먼저 삼공에 승진한 점과 정식 사자가 아닌 점을 들어, 이것이 악침이 자신을 죽이려고 꾸민 일이라고 의심하였다. 이에 제갈탄은 반란을 결심하고 수백 명만 이끌고 당시 양주자사였던 악침을 먼저 공격하였다. 양주의 관리들은 대부분 제갈탄이 이전에 임명한 자들이어서 그의 호령에 문을 열어주었고, 악침은 누각 위로 도망쳤으나 결국 사로잡혀 살해당하였다.
조정에서는 이 일에 조서를 내려 애도하고 악침을 위위(衛尉)에 추증한 후 시호를 민후(閔侯)라 하였다. 그의 아들 악조(樂肇)가 후사를 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료(張遼)의 아들 장호(張虎)와 함께 세트로 등장하며, 정사와 달리 촉(蜀) 방면에서 활약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제갈량의 2차 북벌 때 장호가 선봉, 악침이 부선봉이 되어 출전하였고, 사마의와 제갈량의 진법 승부에서 장호, 대릉(大陵)과 함께 진을 돌파하려 했으나 실패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알몸에 먹칠을 당한 채 본진으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북원 전투에서는 위수(渭水)에서 장호와 함께 복병이 되어 오의(吳懿), 오반(吳班)의 군대를 습격하여 오반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제갈탄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네 아비 악진은 위나라에 큰 은혜를 입었는데 너는 어찌 사마소의 편을 드느냐"는 일갈을 듣고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