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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시옹 프랑세즈

악시옹 프랑세즈(Action Française)는 1899년 모리스 퓌조(Maurice Pujo)와 앙리 보주아(Henri Vaugeois)에 의해 창립된 프랑스의 극우 왕정복고주의 정치 운동이자 정당이다. 이후 샤를 모라스(Charles Maurras)가 이론적 지도자로 합류하면서 '통합 국민주의(국민주의 통합주의)' 이념을 정립하고 20세기 전반기 프랑스 우파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요 이념 및 특징

  • 왕정복고주의: 공화제를 부정하고 부르봉 왕가 또는 오를레앙 왕가의 군주제 복귀를 주장했다.
  • 통합 국민주의: "정치는 국민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개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프로테스탄티즘, 프리메이슨, 유대인 등을 '반(反)프랑스 4개 세력'으로 규정하며 배격했다.
  • 반유대주의: 드레퓌스 사건 당시 반드레퓌스파의 핵심 세력으로 활동하며 제도화된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
  • 행동주의: 지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거리 시위, 결사체 조직, 언론 활동(기관지 《악시옹 프랑세즈》 발행) 등을 통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역사적 전개

  • 초기(1899~1914):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결집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 전야에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와 청년층, 가톨릭 보수층에서 상당한 세력을 확보했다.
  • 전간기(1918~1939): 제1차 세계대전 승전으로 일시 위축되었으나, 전후 불안정기와 대공황기를 거치며 세력을 확장했다. 1934년 2월 6일 위기(2월 6일 폭동)에서는 우파 연대의 핵심으로 의회 습격을 시도했다.
  • 가톨릭 교회와의 갈등(1926): 교황 비오 11세가 악시옹 프랑세즈를 '교회에 해로운 단체'로 규정하고 저서를 금서 목록에 올리면서 가톨릭 신도들의 이탈이 가속화되었다.
  • 제2차 세계대전 및 비시 정권: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협력한 비시 정권하에서 일정 역할을 했으나, 모라스는 독일 점령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기도 했다.
  • 전후 처리: 해방 후 모라스는 반역죄로 종신형(후에 감형)을 선고받았고, 조직은 해산되었다.

평가 및 의의 악시옹 프랑세즈는 제3공화국 프랑스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영향력 있는 극우 운동체로, 유럽 파시즘의 지적 원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샤를 모라스의 '이유 있는 국민주의' 이론은 이후 유럽의 여러 우파 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현재도 동명의 잡지 등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과거와 같은 정치적 영향력은 상실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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