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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마드 알 만수르

아흐마드 알 만수르(아랍어: أبو العباس أحمد المنصور بالله, Abū l-ʿAbbās Aḥmad al-Manṣūr biʾllāh, 1549년경 ~ 1603년 8월 25일)는 1578년부터 1603년까지 모로코를 통치한 사드 왕조(Saadi dynasty)의 제6대 술탄이다. '알 만수르'(al-Manṣūr)는 아랍어로 '승리자'를 의미하며, '알 자하비'(al-Dhahabī, '황금왕')라는 별칭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흐마드는 사드 왕조의 초대 술탄인 무함마드 앗 셰이크의 다섯째 아들로, 페스(Fez)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1557년 암살된 후 권력 투쟁이 발생하자, 그는 형 압드 알말리크와 함께 오스만 제국 영토인 알제리와 이스탄불로 망명하여 17년간 체류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이슬람 신학, 법학, 문법, 수학, 천문학 등 광범위한 학문 교육을 받았다.

1578년, 그의 형인 술탄 아부 마르완 압드 알말리크 1세가 포르투갈과의 전투(크사르 엘 케비르 전투, 일명 '세 왕의 전투') 중 사망하자, 아흐마드가 그 뒤를 이어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이 전투에서 모로코가 승리하면서 그는 막대한 포르투갈 포로 몸값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마라케시에 엘 바디 궁전(El Badi Palace)을 건축하는 등 대규모 건축 사업을 추진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그는 외교적 균형술에 능하여 오스만 제국의 종주권 요구를 사실상 무력화하면서도 유럽 열강(특히 에스파냐, 포르투갈, 영국)과의 관계를 교묘히 활용하였다. 1600년에는 사절 압드 엘와헤드 벤 메사우드를 영국 엘리자베스 1세의 궁정에 파견하여 에스파냐에 대항하는 동맹을 협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신대륙 식민지 개척에 대한 구상과 알안달루스(이베리아 반도) 회복에 대한 포부를 표명한 바 있다.

1590년, 그는 서아프리카의 송가이 제국(Songhai Empire)을 원정하였다. 에스파냐 출신의 유대교 개종자인 주다르 파샤(Judar Pasha)가 지휘하는 4,000명의 군대를 사하라 사막을 넘어 파견하였고, 1591년 톤디비 전투(Battle of Tondibi)에서 화약 무기를 앞세워 송가이 군대를 격파하고 팀북투, 제네, 가오 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사하라 횡단의 물류 문제로 인해 이 지역에 대한 모로코의 통제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아흐마드 알 만수르는 1603년 페스에서 사망하였으며, 마라케시의 사드 왕조 묘지(Saadian Tombs)에 안장되었다. 그의 사후 두 아들 지단 알 나시르와 아부 파레스 압둘라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며 사드 왕조는 분열되었다.

그는 이슬람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며, 서적과 서예, 수학을 사랑하고 신비주의 문헌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1602년에는 담배 사용을 금지하는 최초의 파트와(이슬람 법적 판결)를 발표한 통치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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