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레 공화국(República do Acre)은 1899년부터 1903년까지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영토의 아크레 지역에 수립되었던 분리주의 공화국이다. 포르투갈어로는 "히푸블리카 두 아크리"(República do Acre), 스페인어로는 "레푸블리카 델 아크레"(República del Acre)라고 불렸으며, 아크레 독립국(Estado Independente do Acre)으로도 지칭되었다.
배경
19세기 후반, 아마존 지역의 고무 붐(rubber boom)으로 인해 많은 브라질인 이주민들이 아크레 지역으로 유입되었다. 당시 아크레 지역은 1867년 아야쿠초 조약(Treaty of Ayacucho)에 따라 브라질과 볼리비아 사이에서 볼리비아 영토로 확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가 브라질인이었던 이 지역에서는 볼리비아로부터의 분리 독립 움직임이 일어났다.
역사
아크레 공화국은 세 차례에 걸쳐 독립이 선언되었다.
제1공화국(1899~1900): 스페인 출신의 언론인이자 전직 외교관인 루이스 갈베스 로드리게스 데 아리아스(Luis Gálvez Rodríguez de Arias)가 아마조나스 주 정부의 비밀 지원을 받아 원정대를 이끌었고, 1899년 7월 14일 자신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포하며 제1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수도는 푸에르토 알론소(Puerto Alonso)로, 이후 시다드 두 아크레(Cidade do Acre)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1900년 3월 브라질 정부가 군대를 파견하여 갈베스를 체포하고 아크레를 볼리비아에 반환하면서 제1공화국은 소멸하였다.
제2공화국(1900): 1900년 11월, 호드리구 드 카르발류(Rodrigo de Carvalho)를 대통령으로 하는 제2공화국 수립이 시도되었으나 곧 진압되었다.
제3공화국(1903): 히우그란지두술 출신의 베테랑 군인 조제 플라시두 드 카스트루(José Plácido de Castro)가 독립 운동의 지휘를 맡아 혁명군을 재조직하였고, 1903년 1월 27일 제3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아크레 혁명군은 연이어 승리를 거두었으나, 브라질 대통령 호드리게스 아우베스(Rodrigues Alves)는 북부 아크레 지역에 브라질 군대를 파견하였다.
종결
1903년 11월 11일, 브라질의 외무장관 바랑 두 히우브랑쿠(Baron of Rio Branco)의 외교적 중재로 페트로폴리스 조약(Treaty of Petrópolis)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볼리비아는 아크레 지역을 브라질에 할양하는 대가로 마투그로수 지역의 영토, 200만 파운드의 배상금, 그리고 볼리비아의 외부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마데이라-마모레 철도 건설을 약속받았다. 1904년 2월 25일, 아크레는 공식적으로 브라질의 연방 영토가 되었으며, 현재는 브라질의 아크레 주(State of Acre)로 존재한다.
의의
아크레 공화국은 국제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미승인국(unrecognized state)이었으며, 19세기 말~20세기 초 아마존 고무 붐 시기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영토 분쟁이 만들어낸 단명한 정치적 실체였다. 이 공화국의 역사는 브라질의 영토 확장 과정과 남아메리카 국경 분쟁의 한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