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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번

아이즈번(일본어: 会津藩, 아이즈한)은 일본 에도 시대 무쓰국(陸奥国) 아이즈군(会津郡)에 존재했던 번(藩)으로, 현재의 후쿠시마현(福島県) 서부 지역을 지배하였다. 번청(藩庁)은 아이즈와카마쓰시(会津若松市)에 있는 와카마쓰성(若松城)이다.

역사

센고쿠 시대의 아이즈 지방은 센고쿠 다이묘 아시나 씨(蘆名氏)가 구로카와(黒川)를 본거지로 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1589년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아시나 가문을 멸망시키고 이 지역을 차지하였으나,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아이즈 지방 및 주변 지역을 몰수당하였고, 대신 가모 우지사토(蒲生氏郷)가 아이즈 42만 석(훗날 92만 석)의 영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우지사토는 구로카와를 와카마쓰(若松)로 개명하고 가미가타(上方)로부터 상인들을 초빙하여 영지 경영에 공헌하였다.

1598년 가모 히데유키(蒲生秀行)가 우쓰노미야번 12만 석으로 삭감 전봉되었고, 에치고국(越後国)으로부터 우에스기 가게카쓰(上杉景勝)가 120만 석으로 입번하였다. 그러나 가게카쓰는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에서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편에 섰다는 이유로 1601년 요네자와번(米沢藩) 24만 석으로 삭감 전봉되었다. 같은 해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측에서 싸웠던 가모 히데유키가 60만 석으로 추가되어 아이즈로 돌아왔다.

1627년 가모 다다사토(蒲生忠郷)가 후사 없이 급사하자 영지가 몰수될 위기에 처했으나, 대신 마쓰야마번(松山藩)으로부터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가 아이즈로 들어왔다. 그러나 2대 번주 가토 아키나리(加藤明成)가 '아이즈 소동(会津騒動)'이라는 후계자 분쟁에 휘말리면서 영지를 반납하게 되었다.

1643년, 야마가타번(山形藩)에 있던 호시나 마사유키(保科正之)가 23만 석으로 아이즈 번에 들어왔다. 마사유키는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의 사생아이자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의 배다른 동생으로, 이에미쓰의 신뢰를 받아 막부 정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후 호시나 씨는 3대 마사카타(正容) 대에 마쓰다이라(松平)로 개성하였고,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후손으로 인정받아 신판 다이묘(親藩大名)가 되었다. 이후 실제 고쿠다카(石高)는 40만 석까지 올라갔으며, 미토번(水戸藩, 도쿠가와 고산케 중 하나)보다 실수입이 많고 군사력도 강대한 번이 되었다.

막말과 보신 전쟁

막말(幕末), 마지막 번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松平容保)는 1862년 교토슈고쇼쿠(京都守護職)를 맡아 교토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였으며, 신센구미(新選組)의 상관으로도 알려져 있다. 보신 전쟁(戊辰戦争, 1868~1869년) 중 아이즈 전쟁(会津戦争)에서 메이지 신정부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패배하였고, 1869년 폐번치현(廃藩置県)으로 아이즈번은 해체되었다.

영향

아이즈번 출신 인사들은 폐번치현 이후에도 일본 경찰 조직에 상당한 영향력을 남겼다. 현재의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쓰시는 아이즈번의 옛 영지에 해당하며, 와카마쓰성(쓰루가성)은 그 상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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