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헐 (Isaac Hull, 1773년 3월 9일 – 1843년 2월 13일)은 미국의 해군 장교로, 1812년 전쟁(미영 전쟁) 당시 USS 컨스티튜션(USS Constitution)함의 함장을 맡아 영국 해군 프리깃함 HMS 게리에르(HMS Guerriere)를 격파하는 등 중요한 승리를 거두며 미국 해군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생애 초기 및 경력 아이작 헐은 1773년 3월 9일 코네티컷주 더비(Derby)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항해에 관심을 보였으며, 상선에서 선원 생활을 시작하며 실질적인 해상 경험을 쌓았다. 1798년 프랑스와의 유사전쟁(Quasi-War)이 발발하자, 미국 해군에 중위로 임관하면서 군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USS 컨스티튜션 함을 포함한 여러 함선에서 복무하며 기초를 다졌다.
바르바리 전쟁 19세기 초, 지중해에서 미국 상선을 약탈하던 바르바리 해적에 대항하기 위한 제1차 바르바리 전쟁(1801-1805)에 참전했다. 이 시기에도 그는 USS 아르거스(USS Argus) 함 등에서 복무하며 전투 경험을 축적했으며, 해군 장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1812년 전쟁과 명성 헐의 명성은 1812년 전쟁(미영 전쟁)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USS 컨스티튜션 함의 함장으로 임명되었고, 1812년 7월 영국 해군 함대와의 추격전에서 뛰어난 항해술과 전술적 판단으로 포위망을 벗어나며 능력을 입증했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812년 8월 19일, 뉴펀들랜드 해상에서 HMS 게리에르(HMS Guerriere)와의 전투였다. 헐은 컨스티튜션 함을 지휘하여 게리에르를 완전히 압도했고, 게리에르는 심각한 손상을 입어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 이 전투는 1812년 전쟁 중 미국 해군이 거둔 최초의 주요 승리 중 하나였으며, 당시 영국 해군이 무적이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데 기여했다. 컨스티튜션 함이 게리에르의 포탄을 견뎌내 '올드 아이언사이드(Old Ironsides)'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 전투 덕분이었다. 이 승리로 아이작 헐은 전국적인 영웅으로 칭송받았고, 의회로부터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전쟁 이후의 경력 1812년 전쟁 이후에도 헐은 계속해서 해군에 복무했다. 보스턴 해군 공창(Boston Navy Yard)과 워싱턴 해군 공창(Washington Navy Yard)의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태평양 비행전대(Pacific Squadron)와 지중해 비행전대(Mediterranean Squadron)를 지휘하기도 했다.
사망 아이작 헐은 1843년 2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사망했으며, 필라델피아의 로럴 힐 공동묘지(Laurel Hill Cemetery)에 안장되었다.
유산 아이작 헐은 미국 해군의 초기 영웅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그의 지휘 아래 컨스티튜션 함이 거둔 승리는 미국 해군의 사기를 높이고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러 미국 해군 함선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그의 리더십과 용기는 오늘날까지 미국 해군의 귀감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