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신기오로 인청(愛新覺羅 胤礽, 만주어: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ᡳᠨ ᠴᡝᠩ Aisin Gioro In Ceng, 1674년 6월 16일 ~ 1725년 1월 27일)은 청 제국의 황족으로, 제4대 황제인 강희제(康熙帝)의 둘째 아들이자 적장자이다. 한국어권에서는 주로 '애신각라 윤잉' 또는 '아이신기오로 윤잉'으로도 알려져 있다. '인청'이라는 이름은 만주어 이름 'In Ceng'의 음차이며, 한자 차용 표기로는 '胤礽'이다. 옹정제가 즉위한 후 피휘(避諱) 정책에 따라 '윤청(允礽)'으로 개명되었다.
강희제의 첫 번째 황후인 효성인황후(孝誠仁皇后, 허서리씨)의 소생으로, 생모가 난산으로 사망한 후 강희제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성장하였다. 1675년(강희 14년), 생후 2세의 나이에 청 제국 역사상 유일하게 황제가 공식 석상에서 책봉한 황태자(皇太子)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4세에 천자문을 떼고 7세에 사서오경을 암송하였으며, 한어·만주어·몽골어에 능통하였다.
그러나 30대 이후 환락과 주색에 빠지고 형제들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강희제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1708년(강희 47년), 강희제는 인청이 황권을 위협하고 역모를 획책하였다는 이유로 그를 황태자에서 폐위하고 서인(庶人)으로 강등하였다. 이듬해인 1709년에 복위되었으나, 1712년(강희 51년) 다시 역모 혐의로 폐위되어 함안궁(咸安宮)에 유폐되었다. 이후 생전에 석방되지 못하고 1725년, 함안궁에서 5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망 원인은 자연사설과 타살설이 있으나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사후 옹정제(雍正帝)에 의해 이친왕(理親王)으로 추봉되었고, 시호는 '밀(密)'으로 정해져 이밀친왕(理密親王)으로 불린다. 그의 폐위 이후 청 제국은 황제 재위 기간 중에는 황태자를 공식적으로 책봉하지 않고, 황제 사후 유언장을 통해 후계자를 지명하는 '저위비건법(儲位秘建法)'을 채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