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데나르더(Oudenaarde, 프랑스어: Audenarde)는 벨기에 플란데런 지역 오스트플란데런주에 위치한 도시이자 지방자치단체이다. 셸트 강(스헬데 강) 연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겐트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다. 2022년 기준 인구는 약 31,866명이며, 면적은 약 68.92km²이다.
역사
이 지역의 역사는 974년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2세가 셸트 강변에 요새를 건설한 데에서 거슬러 올라간다. 인근 에나메(Ename) 지역은 1005년경 로타링기아 공국에서 가장 큰 도시로 성장했으나, 1034년 파괴되었고 이후 인구와 상업 기능이 셸트 강 건너편의 신흥 도시였던 아우데나르더로 이동하였다. 11세기에는 셸트 강의 지리적 이점과 직물 및 태피스트리 산업의 발전으로 경제가 번성하였다. 도시는 중세 내내 플란데런 백작들을 지지하는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아우데나르더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특히 16세기에 유럽 전역에서 태피스트리(직물 벽걸이) 생산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졌다. 도시의 명성은 1526년부터 1537년에 걸쳐 건설된 화려한 고딕 양식의 시청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1522년 이 도시에 머물며, 이후 네덜란드 총독이 되는 서녀(庶女) 파르마의 마르가레테를 두었다.
종교 개혁 시기에는 아우데나르더 주민들이 신교(개신교)를 선택하고 겐트와 연합해 카를 5세에 대항하였다. 1582년 알렉산데르 파르네세의 장기간 포위 끝에 도시가 함락되면서 많은 상인과 장인, 귀족들이 도시를 떠났고, 이후 태피스트리 상업이 잠시 부활했으나 전성기는 재현되지 않았다. 17세기에는 프랑스군에게 한 세기 동안 세 차례 공격을 받았으며, 1708년에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인 아우데나르더 전투가 이 도시 인근에서 벌어졌다.
20세기에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피해를 입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년 5월에 나치 독일군에 점령되었다가 1944년 9월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지리 및 행정 구역
아우데나르더 지방자치단체는 아우데나르더 시 중심부와 베베레, 에델라러, 에이너, 에나메, 회르너, 뢰페헴, 마터르, 멜던, 뮐럼, 네더에나메, 폴커험, 벨던 및 우이커의 일부를 포함한 여러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 및 문화
현대의 아우데나르더는 벨기에 전통 맥주 스타일인 아우트 브라윈(Oud Bruin, 올드 브라운) 양조지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립만스(Liefmans) 양조장이 유명하다. 역사적인 시청사와 그 종탑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플랑드르에서 주요 스포츠 행사인 플랑드르 투어(Tour of Flanders) 사이클 경기가 2012년부터 이 도시에서 종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에는 이 사이클 경기를 주제로 한 박물관도 운영되고 있다.
이름의 유래
도시 이름 Oudenaarde는 네덜란드어로 "오래된 들판"을 의미하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름은 영어의 고어(古語) 표현인 'outnal'(일종의 갈색 리넨 실을 가리키는 용어)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