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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의 엘람 정복

아시리아의 엘람 정복은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이 기원전 7세기 중반, 특히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재위 기원전 668~627년) 시대에 메소포타미아 동쪽에 위치한 고대 왕국인 엘람(Elam)을 상대로 벌인 일련의 군사 작전 및 그 결과 발생한 엘람의 멸망을 의미한다. 주요 군사 작전은 기원전 655년에서 639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배경

엘람인과 아시리아인 간의 충돌은 기원전 721년 이전부터 수년간 지속되어 왔다. 엘람인들은 수세기 동안 바빌로니아(Babylonia)의 정치에 개입하는 관행을 가졌으며, 이는 바빌론을 자신의 영향권 내에 있다고 본 아시리아인들과의 갈등을 초래하였다. 기원전 721년, 바빌로니아인들이 아시리아에 반란을 일으키자 엘람 군대는 바빌론의 반란을 지원하려 시도하였다. 이후 아시리아와 엘람은 기원전 717년 티그리스강, 기원전 694년 엘람 해안 상륙 작전, 기원전 693년 데르(Der) 주 및 디얄라(Diyala) 강 등 여러 차례 충돌하였다. 대부분의 전투는 유혈이 낭자하고 결정적이지 못했으나, 엘람이 메소포타미아 국경 너머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실패한 점에서 아시리아가 대체로 우위를 점하였다.

울라이 전투와 엘람의 쇠퇴

기원전 655년, 엘람이 바빌론을 공격하는 데 실패한 이후 엘람의 국력은 급속히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수사(Susa) 평야에서 벌어진 울라이 전투(Battle of Ulai)에서 아시리아 군대는 강력한 엘람 방어 진지를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엘람의 왕 테움만(Teumman)은 전투 중 참수되었다. 이후 또 다른 바빌로니아 반란이 발생하여 엘람은 즉각적인 침략을 모면하였으나, 엘람은 아슈르바니팔의 최우선 정복 목표 중 하나로 남았다.

엘람 원정과 멸망

기원전 648년, 엘람의 주요 도시 수사가 파괴되었다. 기원전 639년, 아슈르바니팔은 전군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시켜 엘람을 최종적으로 정복하였다. 이 시기 엘람은 내전이 발발하고 북쪽 국경이 페르시아인들에게 잠식당하는 등 내부적으로 극도로 취약한 상태였다. 아슈르바니팔은 자신의 기록에서 "한 달 25일의 여정 동안 엘람의 지방들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소금을 뿌렸다"고 승전을 자랑스럽게 기록하였다. 수사, 마닥투(Madaktu), 할테마쉬(Haltemash) 등 엘람의 주요 도시들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엘람은 독립적인 정치 실체로서 소멸하였다.

결과

엘람이 파괴된 후, 아시리아 제국 역시 수년간의 전쟁으로 전쟁 수행 능력이 소진되어 급속히 쇠퇴하였다. 엘람 멸망 이후 약 34년 만인 기원전 609년, 신아시리아 제국은 신바빌로니아와 메디아 등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후 엘람 지역은 메디아 제국과 아케메네스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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