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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속주

아시리아 속주(라틴어: Provincia Assyria)는 로마 제국의 속주 가운데 하나로, 서기 116년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파르티아 원정의 결과로 설치한 세 개의 속주(메소포타미아, 아르메니아, 아시리아) 중 하나이다. 그러나 아시리아 속주는 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트라야누스의 후임자 하드리아누스가 118년에 해당 영토에서 철수하면서 소멸되었다.

역사

4세기 중엽, 발렌스 황제의 지시로 기록을 남긴 역사가 에우트로피우스(Eutropius)와 페스투스(Festus)에 따르면, 트라야누스는 서기 116년 파르티아에 대한 성공적인 원정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을 넘어 아디아베네(Adiabene) 지역의 영토를 점령하고 파르티아의 수도 셀레우키아-크테시폰과 바빌론까지 진격하였다. 이 원정의 결과로 트라야누스는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아시리아의 세 속주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트라야누스의 정복은 순탄하지 않았다. 파르티아 대공 산트루케스(Santruces)가 지역민들로 구성된 무장 반란을 일으켜 로마 수비군을 몰아냈고, 로마 지휘관들은 반란 진압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트라야누스는 셀레우키아와 에데사를 점령하여 불태우고 꼭두각시 파르티아 왕을 세우는 방식으로 반란을 진압하였으나, 귀국 도중 병환에 걸려 117년 8월 8일 사망하였다.

트라야누스의 후임자인 하드리아누스는 동방에서 새로 획득한 영토들이 제국을 과도하게 확장시켰다고 판단하고, 막대한 군사 비용을 이유로 유프라테스강 동쪽의 영토를 포기하기로 결정하였다. 118년, 하드리아누스는 철수를 단행하면서 아시리아 속주는 소멸되었다.

위치

아시리아 속주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존재한다. 4세기 역사가 에우트로피우스와 페스투스는 아시리아 속주가 "티그리스강 동쪽에 있고 일반적으로 아디아베네와 동일시되었다"고 기록하였다. 반면 일부 현대 학자들은 오늘날 이라크 중부 지역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위치했다고 주장한다. 고고학자 앙드레 마리크(André Maricq)는 아시리아 속주를 3세기 사푸르 비문에 등장하는 아수레스탄(Asurestan)과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존재 여부에 대한 논란

트라야누스의 아르메니아 속주와 메소포타미아 속주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의 화폐(주화)가 존재하여 속주 설치의 고고학적 증거가 확보되어 있으나, 아시리아 속주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화폐학적 증거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C. S. 라이트풋(Lightfoot)과 F. 밀러(Millar) 등 일부 학자들은 아시리아 속주가 실제로 설치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후의 상황

118년 하드리아누스의 철수 이후 아시리아 속주는 다시 설치되지 않았다. 2세기 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파르티아 원정 이후 메소포타미아 속주와 오스로에네(Osrhoene) 속주를 설치하였을 때에도 아시리아 속주에 대한 언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4세기 로마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Ammianus Marcellinus)는 아디아베네 지역이 과거에 아시리아로 불렸다고 언급하였으나, 이곳이 로마의 속주였다는 암시는 하지 않았다.

아시리아 속주가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고대 아시리아 본토와 일치하며, 메디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셀레우코스 왕조, 사산 왕조, 파르티아 왕조 모두 해당 지역에 유사한 명칭(아수르, 아수라, 아수리스탄)을 사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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