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틀란(Aztlán)은 아즈텍(메시카) 민족의 신화적 기원지이자 전설상의 고향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나와틀어(Nahuatl)에서 '아스테카(Azteca)'라는 단어는 "아스틀란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아즈텍'이라는 명칭 자체가 이 지명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스틀란은 식민지 시대의 여러 민족사(民族史) 자료에서 언급된다. 각 자료는 아스틀란에서 멕시코 중부로 이주한 다양한 부족들의 목록을 서로 다르게 인용하고 있으나, 이후 멕시코-테노치티틀란을 건설한 메시카인들은 모든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다. 메시카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일곱 부족이 '치코모스톡(Chicomoztoc, 일곱 동굴의 장소)'에 살았으며, 각 동굴은 하나의 나와 부족을 상징했다. 이 부족들은 이후 동굴을 떠나 아스틀란 근처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스틀란에 대한 묘사는 자료마다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일부 전설은 아스틀란을 낙원으로 묘사하는 반면, 오빈 코덱스(Codex Aubin)에 따르면 아즈텍인들은 '아스테카 치코모스토카'라는 폭압적인 지배 계층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사제의 인도에 따라 이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주 과정에서 그들의 신 우이칠로포치틀리(Huitzilopochtli)는 그들이 더 이상 스스로를 '아스테카'라고 부르지 말고 '메시카'로 칭하라고 명령했다고 전해진다.
남쪽으로의 이주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추정이 존재한다. 2004년에 번역된 『아날레스 데 틀라텔롤코(Anales de Tlatelolco)』는 아스틀란을 떠난 유일한 구체적 연대를 제시하는데, 이는 1064~1065년경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주 과정은 약 200년간 지속된 것으로 전해지며, 부족들은 중간에 톨텍의 수도 톨란(Tollan)에 잠시 정착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텍스코코 호수에서 독수리가 선인장 위에 앉아 뱀을 물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후 그곳에 테노치티틀란을 건설했다는 것이 전승의 내용이다.
아스틀란의 실제 위치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멕시코 북서부 또는 미국 남서부에 위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아스틀란이 실제 지리적 장소인지 순전히 신화적인 개념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1960년대에는 멕시코 나야리트주(Nayarit)의 멕스칼티탄(Mexcaltitán) 섬이 아스틀란의 후보지로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 가설 역시 확정되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상충되는 기록들로 인해 아스틀란의 실제 위치를 찾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아스틀란이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도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백로(白鷺)가 많은 곳'이라는 해석이 『크로니카 메시카요틀(Crónica Mexicáyotl)』에 제시되어 있으나, 나와틀어 형태론상 '백로의 장소'는 '아스타틀란(Aztatlan)'이 되어야 하므로 이 해석은 언어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그 외에 '흰 곳' 또는 '도구 근처의 장소'라는 해석도 제안되었으나 확정된 바는 없다.
한편, 아스틀란은 20세기 이후 치카노(Chicano) 운동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1969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전국 치카노 청년 해방 회의에서 시인 알루리스타(Alurista)가 발표한 시를 통해 '엘 플란 데 아스틀란(El Plan de Aztlán)'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일부 치카노 활동가들은 1846~1848년 멕시코-미국 전쟁으로 미국에 편입된 멕시코 영토를 '아스틀란'으로 지칭하며, 이 지역에 대한 원초적 권리를 주장하는 상징으로 사용해 왔다. 다만 많은 치카노들은 아스틀란을 물리적 장소가 아닌 정신적·문화적 지도 원리로 이해한다.
아스틀란은 또한 문학과 대중문화에서도 등장한다. 루돌포 아나야(Rudolfo Anaya)의 소설 『하트 오브 아스틀란(Heart of Aztlán, 1976)』, 게리 제닝스(Gary Jennings)의 소설 『아즈텍(Aztec, 1980)』, 맥스 브룩스(Max Brooks)의 『월드 워 Z(World War Z, 2006)』 등에서 미래의 가상 국가 또는 상징적 장소로 묘사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