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민 알 후세이니(Mohammed Amin al-Husseini, 1897년경~1974년 7월 4일)는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시기에 활동한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주의자이자 이슬람 종교 지도자이다. 그는 1921년부터 1948년까지 예루살렘의 그랜드 무프티(Grand Mufti)직을 역임했으며,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운동의 초기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아민 알 후세이니는 예루살렘의 유력한 가문인 후세이니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중 오스만 제국군에서 복무하였다. 전쟁 종결 이후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가 시작되자, 그는 시오니즘과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1921년 영국 위임통치 정부에 의해 예루살렘의 그랜드 무프티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최고 이슬람 평의회(Supreme Muslim Council)의 의장을 맡아 종교적·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1936년 팔레스타인 아랍 봉기가 발생했을 때 그는 아랍 고등 위원회(Arab Higher Committee)를 조직하여 이를 주도했다. 영국 당국이 그를 체포하려 하자 1937년 팔레스타인을 탈출하여 레바논, 이라크 등을 거쳐 이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추축국인 나치 독일 및 이탈리아 왕국과 협력했다. 1941년 베를린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면담했으며, 독일의 지원을 받아 아랍 지역의 독립을 보장받으려 시도했다. 또한 발칸 반도 내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무장 친위대(SS) 산하 부대인 제13SS무장산악사단 '한트샤르'의 모집을 지원하기도 했다.
전쟁 종료 후 프랑스에 구금되었다가 탈출하여 이집트 카이로로 망명했다. 1948년 제1차 중동 전쟁 당시 전팔레스타인 정부(All-Palestine Government)의 수반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나, 요르단 등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정치적 갈등 및 영향력 약화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후 그의 정치적 입지는 야세르 아라파트 등 차세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등장하며 점차 축소되었다. 1974년 베이루트에서 사망했다.
그의 행적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과의 협력 이력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