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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넴헤트 3세

아메넴헤트 3세(Amenemhat III, 재위 약 기원전 1860년~기원전 1814년)는 고대 이집트 중왕국 시대 제12왕조의 제6대 파라오이다. 그의 이름은 고대 이집트어로 '아문(Amun)이 앞장서다'라는 의미이며, 즉위명(프레노멘)은 네마아트레(Ni-maat-re)로 '레(라)의 정의에 속한 자'라는 뜻이다.

가계와 즉위

아메넴헤트 3세는 전임 파라오인 세누스레트 3세의 아들이다.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그는 아버지가 재위 20년 차에 이르렀을 무렵 공동 통치자로 승격되어, 이후 약 20년간 아버지와 함께 왕위를 공유하며 실질적인 통치를 맡았다. 일부 학자들은 두 왕이 각각 단독 통치를 했다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에집톨로지스트들이 공동 통치설을 지지한다. 아버지인 세누스레트 3세는 누비아에 대한 공세적 군사 작전과 지방 총독들의 권력 축소 정책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평화로운 이집트를 구축했으며, 아메넴헤트 3세는 이를 이어받아 대부분 내치와 건설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통치 기간

그의 통치 기간은 적어도 45년 이상으로 확인되며, 엘라훈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파편에 기록된 46년차 기록이 그의 재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의 치세는 이집트 중왕국의 문화적·경제적 전성기로 평가된다. 훈련된 기록에 따르면, 통치 말년에는 후계자 아메넴헤트 4세와 공동 통치를 시작했으며, 누비아 셈나의 암석 비문은 아메넴헤트 4세의 1년차가 아메넴헤트 3세의 44년차(또는 46~48년차)와 동일한 시기임을 보여준다.

건설 활동 및 파이윰 지역 개발

아메넴헤트 3세는 파이윰(Faiyum) 지역 개발에 특히 주력했다. 그는 이 지역에 세베크(Sobek) 신에게 바치는 대규모 신전을 건립했고, 메디네트 마디(Medinet Madi)에 레네누테트(Renenutet) 여신의 예배소를 세웠다. 또한 비아흐무(Biahmu)에 자신의 거대한 좌상 두 점을 건립하고, 모이리스 호수(Lake Moeris)의 배수·개간 사업에 기여했다. 이 사업은 세누스레트 2세 때 시작된 것으로, 파이윰 저지대를 나일강과 연결하여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일강 수위를 기록한 쿰마와 셈나의 비문은 그가 홍수 조절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피라미드

아메넴헤트 3세는 제4왕조의 스네페루 이후 최초로 두 개의 피라미드를 건설한 파라오이다. 첫 번째는 다슈르(Dahshur)에 세운 검은 피라미드(Black Pyramid)로, 재위 초기에 착공되었으나 지하수 침투로 인한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여 중단되었다. 이후 파이윰의 하와라(Hawara)에 두 번째 피라미드를 건설했으며, 그 앞에 세워진 장제전은 고대 그리스 여행가인 헤로도토스와 스트라본이 '라비린토스'라 칭한 거대한 건축물로, 로마 시대 이전에 파괴되었다. 하와라 피라미드 남동쪽에는 그의 딸로 추정되는 네페루프타흐(Neferuptah)의 피라미드가 있다.

광산 개발과 무역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이집트 본토와 시나이반도, 누비아 지역의 광산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시나이반도 세라빗 엘-카딤(Serabit el-Khadim)에서는 청록색 터키석과 구리 채굴이 절정에 달했으며, 와디 함마마트(Wadi Hammamat)의 점판암, 와디 엘-후디(Wadi el-Hudi)의 자수정, 투라(Tura)의 석회암, 하트누브(Hatnub)의 설화석고, 아스완(Aswan)의 화강암 등이 체굴되었다. 또한 푼트(Punt) 지역으로 다수의 무역 탐사대를 파견했으며, 홍해 연안의 메르사(Mersa)에서 발견된 비석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군사 활동

그의 재위 기간에는 대규모 군사 원정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다. 누비아 쿰마 인근에서 발견된 암석 비문은 재위 9년차에 소규모 군사 작전이 있었음을 보고하며, 케르마(Kerma)에서 발견된 비석에는 성벽 건설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으나 그 출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가족과 계승

그의 왕비로는 아트(Aat)와 케네메트네페르헤제트 3세(Khenemetneferhedjet III)가 확인되며, 둘 다 다슈르 피라미드에 함께 묻혔다. 딸인 네페루프타흐는 이름이 카르투슈로 장식된 것으로 보아 후계자로 준비되었으나 아버지보다 일찍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후계자로는 아메넴헤트 4세가 지명되었으나, 그의 정확한 가족 관계는 불분명하다. 일부 학자들은 아메넴헤트 4세가 아들보다는 사위이거나 방계 친척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후 그의 딸로 여겨지는 소베크네페루(Sobekneferu)가 12왕조의 마지막 통치자가 되었다.

사후

아메넴헤트 3세는 하와라 피라미드에 묻혔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의 미라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통치 말년의 조각상은 주름진 얼굴과 무거운 눈꺼풀 등 실제 나이가 반영된 사실적인 표현 방식을 보여주며, 이는 중왕국 조각의 특징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는 파이윰 지역에서 사후 수세기 동안 신격화되어 숭배되었다. 그의 치세는 중왕국의 황금기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약 80점에 달하는 조각상이 그에게 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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