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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치 마리

아마치 마리(일본어: 天地 真理, 1951년 11월 5일 ~ )는 1970년대 일본에서 활동한 가수이자 배우이다. 본명은 사이토 마리(齋藤眞理)이며, 결혼 후의 이름은 아오키 마리(青木眞理)이다.

일본 사이타마현 오미야시(현 사이타마시)에서 태어났다. 이름인 '마리'(真理)는 사이타마현의 한 스님이 지어준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하였고, 이후 어머니를 따라 도쿄도 나카노구로 이사하였으며, 이후 여러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쿠니타치 음악대학 부속고등학교에서 처음 피아노과에 들어갔다가 성악과로 전과하였고, 1970년 3월 졸업하였다.

1970년 7월, 여배우 아마지 케이코를 우연히 만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고, 같은 해 TBS의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영 720》(ヤング720)을 통해 방송에 처음 출연하였다. 이후 와타나베 프로덕션에 소속되었고, 1971년 CBS 소니 레코드와 정식 계약을 맺었다.

1971년 10월 1일, 싱글 〈물빛 사랑〉(水色の恋)으로 아이돌 가수로서 데뷔하였으며, 이 곡은 오리콘 싱글 차트 3위에 올랐다. 이후 〈작은 사랑〉, 〈혼자가 아니야〉, 〈무지개를 건너〉, 〈두 사람의 일요일〉, 〈어린 잎의 속삭임〉, 〈사랑하는 여름 날〉, 〈하늘 가득한 행복〉 등의 싱글을 발매하였으며, 이 중 다섯 곡이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하였다. 이는 당시 솔로 여가수로서는 최다 기록이었으며, 이후 마츠다 세이코가 등장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1970년대 초반, 아마치 마리는 천진난만한 이미지로 일본 국민적 아이돌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소니의) 백설공주"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활동하였다. 같은 시기에 데뷔한 미나미 사오리, 코야나기 루미코와 함께 '신 산닌무스메'(新三人娘)로 불리기도 하였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TBS 계열 방송국에서 '마리짱 시리즈'(真理ちゃんシリーズ)라는 이름의 다섯 개 프로그램이 방영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1977년 1월, 갑상선 기능 저하 등의 건강 문제로 입원하였고, 이후 약 2년 반 동안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였다. 1979년 5월 복귀하였으나 예전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983년 2월 마지막 싱글 〈내가 눈이었던 날〉을 발표하였고, 이후 성인 콘셉트로 노선을 변경하여 누드 사진집 발표, 성인 영화 출연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86년 9월 일반인 남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딸을 두었으나, 1996년 이혼하였다. 아마치 마리는 1970년대 일본 아이돌 문화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으며, 후대 아이돌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스타일을 확립한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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