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가와노미야 다루히토 친왕(有栖川宮熾仁親王, 1835년~1895년)은 에도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황족이자 군인, 정치인이다. 아리스가와노미야 노보루히토 친왕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의 제9대 당주를 지냈다.
그는 막부 말기 존왕파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으로 활동하였다. 1868년 보신 전쟁 당시에는 신정부군의 대총독(東征大総督)으로 임명되어 에도 성 무혈 개성을 이끌어내는 등 막부 타도와 왕정복고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메이지 정부 수립 이후에는 태정관 제도 아래에서 좌대신 등을 역임하며 국정에 참여하였고, 일본 제국 육군 원수로서 초기 군사 제도 정립에 기여하였다. 특히 1878년 초대 참모본부 총장을 지냈으며, 1894년 청일 전쟁 당시에는 대본영 참모총장으로서 히로시마에 주재하며 군무를 지휘하던 중 병을 얻어 이듬해 사망하였다.
개인사로는 고메이 천황의 누이인 가즈노미야 지카코 내친왕과 약혼한 관계였으나, 공무합체론에 따른 가즈노미야와 제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의 정략결혼으로 인해 파혼을 겪은 바 있다. 서예와 와카에도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메이지 유신 전후의 혼란기 속에서 황실과 신정부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