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튀르 루리에(Arthur Lourié, 본명 나우모프(Naumov), 1892년 5월 14일[구력 5월 2일] ~ 1966년 10월 12일)는 러시아 태생의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 행정가이다. 초기 소련 아방가르드 음악 운동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으며, 이후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했다.
생애 및 경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태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와 니콜라이 체레프닌에게서 작곡을, 알렉산드르 실로티에게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1910년대 후반부터 미래파 시인들(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 등)과 교류하며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에 참여했다.
러시아 혁명 직후인 1917년부터 1921년까지 인민위원회 교육부(나르콤프로스) 음악부장을 맡아 소련 초기 음악 정책 수립과 교육 개혁에 관여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등 당대 주요 음악가들과 교류했으며, 특히 스트라빈스키와는 긴밀한 우정과 예술적 교분을 나누었다.
1921년 베를린을 거쳐 1922년 파리로 망명했다. 파리에서는 스트라빈스키의 비서이자 대리인으로 일하며 《봄의 제전》, 《결혼》 등의 악보 정리와 초연 준비에 기여했다. 1940년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 당시 미국으로 도피하여 뉴욕과 프린스턴 등지에서 작곡과 강연 활동을 이어갔으며, 1966년 프린스턴에서 사망했다.
음악적 특징 및 주요 작품 초기 작품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신비주의적 화성과 미래파의 실험 정신이 결합된 양상을 보인다. 1915년 작곡한 《세레나데(Séraphin)》나 《형태(Formes en l'air)》 등은 무조성과 그래픽 악보 등 당대 최전선의 실험을 시도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망명 이후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선회하여 스트라빈스키의 영향 아래 명확한 구조와 선율, 리듬을 중시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교향곡 《예언자 예레미야(Le Prophète Jérémie)》, 발레 음악 《검은 깃발(Le Drapeau noir)》, 《아프리카(Afrique)》, 현악 사중주 3번, 성악곡 《마야콥스키의 시에 의한 세 개의 노래》 등이 있다. 후기에는 12음 기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기도 했으나, 독자적인 선법적 감각을 유지했다.
평가 소비에트 초기 아방가르드 음악의 이론가이자 실천가로서,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최측근 협력자로서 20세기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신의 음악어법뿐만 아니라 당대 음악 담론 형성에 기여한 평론가로서의 역할도 주목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