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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바누스

아르타바누스(Artabanus)는 고대 이란 계통의 인명으로, 주로 아케메네스 왕조와 파르티아(아르사케스 왕조) 시기의 여러 인물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이름이다. 그리스어 Ἀρτάβανος(Artábanos)의 라틴어식 표기로, 고대 페르시아어 **Arta-bānu(*아르타의 영광)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아르타'(Arta)는 고대 이란 전통에서 진리·정의·질서를 뜻하는 개념으로, 조로아스터교의 아샤(asha)와 관련이 있다. 파르티아어 및 중세 페르시아어 형태로는 '아르다완'(Ardawān)으로 불렸다. 현재까지 확인된 주요 사용 사례는 다음과 같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기

히르카니아 출신의 아르타바누스(히르카니안 아르타바누스)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측근이자 시종(侍從) 또는 경호 사령관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465년경 크세르크세스 1세를 암살한 뒤 수개월간 페르시아의 섭정 또는 실권자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 문헌에 따라 그가 왕위를 찬탈했는지, 아니면 젊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를 즉위시키고 배후에서 실권을 쥐었는지에 대한 서술이 엇갈린다. 그는 곧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한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유니아누스 유스티누스, 크테시아스 등의 고전 문헌이 상세히 다루고 있다.

파르티아 제국의 왕들

아르타바누스라는 이름은 파르티아 제국의 여러 왕에게 사용되었다.

  • 아르타바누스 1세: 프리아파티오스의 아들이자 미트리다테스 1세의 동생으로, 기원전 127년경부터 124/123년경까지 짧은 기간 재위했다. 조카 프라아테스 2세가 사카(스키타이) 유목민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뒤 왕위에 올랐으며, 재위 기간 중 동방의 월지(Yuezhi)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아르타바누스 2세: 서기 12년경부터 38년경까지 파르티아를 통치했다. 메디아 아트로파테네 출신으로 추정되며, 로마와의 관계, 아르메니아 왕위 계승 문제, 내부 귀족들의 반란 등 여러 난관에 직면했다. 그의 치세는 파르티아 역사에서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아르타바누스 4세: 파르티아 제국의 마지막 왕으로, 224년 호르모즈간 전투에서 사산 왕조의 아르다시르 1세에게 패배하여 전사하면서 파르티아 제국이 해체되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 외에도 파르티아 말기의 여러 인물들이 아르타바누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학자에 따라 왕의 번호 부여에 차이가 존재한다. 예컨대 과거 학계에서 '아르타바누스 3세'로 불리던 인물이 현재 학계에서는 번호가 달리 매겨지는 경우도 있다.

명칭의 역사적 의미

아르타바누스라는 이름은 고대 이란 세계에서 널리 사용된 왕명이자 인명으로, 파르티아 왕조의 왕들뿐 아니라 아케메네스 왕조 시기의 관리들, 후대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기에 걸쳐 등장했다. 이는 아르타(진리·정의)를 숭상하는 이란의 전통적 가치관과 결합된 명예로운 이름으로, 고대 이란 문화권에서 지속적으로 계승된 인명 전통의 하나로 이해된다.

참고 문헌

  • Encyclopaedia Iranica, "ARTABANUS (Arsacid kings)"
  • Encyclopaedia Iranica, "ARTABANUS (Old Persian proper name)"
  • 《위키백과》, "아르타바누스", "아르타바누스 1세", "아르타바누스 2세" 등 관련 항목
  • 고전 문헌: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역사서』, 유스티누스 『폼페이우스 트로구스의 필리피카 발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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