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세니오스 아우토리아노스(그리스어: Ἀρσένιος Αὐτορειανός, 약 1200년경 ~ 1273년 9월)는 1255년부터 1259년, 그리고 1261년부터 1265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지낸 동방 정교회의 성직자이다. 그는 비잔티움 제국의 팔레올로고스 왕조 초기에 중요한 종교적,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특히 미하일 8세 팔레올로고스 황제와의 충돌과 그로 인해 발생한 '아르세니오스 분열'로 잘 알려져 있다.
생애
아르세니오스는 13세기 초에 태어났으며, 처음에는 수도원 생활을 하다가 학식과 경건함을 인정받아 니케아 제국의 황제 테오도로스 2세 라스카리스에 의해 1255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총대주교로서 교회의 규율과 독립성을 강하게 옹호했다.
1259년, 테오도로스 2세가 사망하자, 어린 요안니스 4세 라스카리스가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미하일 8세 팔레올로고스가 섭정으로 권력을 장악했고, 아르세니오스는 미하일의 야심을 경계하여 잠시 총대주교직을 사임했다.
1261년, 미하일 8세가 라틴 제국으로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하고 비잔티움 제국을 재건하자, 그는 아르세니오스를 다시 총대주교로 복귀시켰다. 아르세니오스는 미하일 8세에게 황제 대관식을 치러주었으나, 미하일이 어린 공동 황제 요안니스 4세 라스카리스의 눈을 멀게 하고 폐위시키자 이에 분노했다. 그는 미하일 8세의 행위를 중대한 죄악으로 간주하고, 1262년에 미하일 8세를 파문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아르세니오스 분열
미하일 8세에 대한 파문은 제국 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하일 8세는 아르세니오스를 폐위시키기 위해 시노드를 소집했고, 1265년 아르세니오스는 총대주교직에서 폐위되어 마르마라 해의 한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는 1273년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아르세니오스의 폐위와 사망 이후에도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미하일 8세의 파문이 부당하게 철회되었다고 주장하며 교회의 새로운 총대주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 지지자들은 '아르세니오스파' 또는 '아르세니오스주의자'라고 불렸으며, 이는 약 50여 년간 지속된 '아르세니오스 분열'(Arsenite Schism)로 이어졌다. 이 분열은 1310년 안드로니코스 2세 팔레올로고스 황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해결되었다.
평가
아르세니오스 아우토리아노스는 교회의 권위와 정통성을 황제의 권력보다 우위에 두려 했던 강직한 성직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미하일 8세에 대한 파문은 황제권에 대한 교회의 도덕적 우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같이 보기
-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목록
- 미하일 8세 팔레올로고스
- 비잔티움 제국
- 동방 정교회